"제가 횡단보도 위에 서고 싶어 섰겠습니까. 우회전 차량들이 보행신호에 걸려 꼼짝하지 않으니 전들 별수 있냐 이 말입니다"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차량이 횡단보도 위에 서 있는 것은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입니다. 범칙금 4만원입니다."1일 오전 8시 시청앞 태평로 대한문 사거리. 김모(52)씨는 남대문쪽에서 3차로를 통해 시청 방향으로 직진하려다 낭패를 당했다. 녹색 신호를 보고 출발했지만 직진과 우회전을 함께 하는 차로를 이용한게 실수였다. 보행신호에 걸려 멈춰 선 우회전 차량들 때문에 뒤따르던 김씨도 차를 세웠는데, 하필 횡단보도 위에 서버린 것. 김씨는 단속 경찰관에게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딱지를 떼이고 말았다.
경찰의 교차로와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 단속 첫날인 이날 서울 시내 도로에서는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하려는 경찰과 '억울한 상황'을 설명하는 운전자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날 대부분 운전자들은 정지선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평소 운전습관이 몸에 밴 탓에 곳곳에서 위반자가 속출했다. 특히 단속 사실 자체를 몰랐던 운전자들도 상당했다. 오전 8시 영등포역 앞에서 횡단보도를 훨씬 지나쳐 정차했다가 단속에 걸린 김모(30)씨는 "오늘부터 계도기간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앞서 가던 버스 때문에 신호를 보지 못해 진입했다"고 하소연했다.
경찰관들이 위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단속 책자를 꺼내보는 등 우왕좌왕하는가 하면 융통성마저 보이지 않아 운전자들의 불만을 샀다. 택시기사 홍모(55)씨는 "신호등 바로 앞 도로변에서 손님을 태우고 전진하다 정지선에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걸 모두 단속하면 사납금을 어떻게 채우란 말이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단속을 피하려고 무리하게 정지선 앞에서 급정거를 하다 추돌사고가 나기도 했다. 오전 7시30분께 종로4가 횡단보도에서는 2.5톤 트럭이 정지선 앞에 정차한 택시를 들이받는 3중 추돌사고가 났다. 트럭 운전사 박모(42)씨는 "앞차들이 갑자기 횡단보도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사고를 냈다"고 말했다. 또 정지선 침범 차량이 후진을 하다가 뒤에 멈춰선 차량과 접촉사고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경찰청이 이날 하루동안 전국 주요 대도시의 1,800여개 교차로에 경찰관을 배치해 단속한 결과 총 5,382건의 정지선 위반 차량을 적발했다. 이에 따른 범칙금 수입은 3억원에 달했다. 정지선 준수율은 예전의 55.4%보다 훨씬 높아진 80%대를 나타냈지만, 경찰 단속이 이뤄지지 않은 낮시간 대에는 정지선 침범 차량들이 급증하기도 했다.
/안형영기자ahnhy@hk.co.kr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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