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출판을 시작할 무렵인 십여 년 전만 해도 직원이 예닐곱 이상이면 중견 출판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열명이 넘으면 대형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저같이 포부가 작은 사람은 5명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주문받고 포장하는 일이 사장 이하 모든 직원의 주요 업무였습니다.그런데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올해 출판계는 어떨까요? 예닐곱 명 이하의 출판사는 생존조차 불투명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기억에 남으려면 적어도 두 자릿수 이상의 직원이 일해야 합니다. 주문 받은 책을 포장과 배송은 대부분 외부에 맡기고 아침부터 저녁, 아니 밤까지 오로지 책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출판사의 사업환경이 좋아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자료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판 발행부수는 3,000부를 넘지 못합니다. 인문이나 철학 도서의 경우 2,000부 이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저희 출판사의 경우 초판 발행부수는 분명 줄어들었습니다. 서점의 서적 당 주문 부수 또한 현격히 감소했습니다. 예전에는 최소 10부(특별한 경우 5부)였던 것이 지금은 한 부입니다. 오늘도 5부 이하 주문이 주문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지회사 사장님이 엊그제 통화하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출판사도 기업체제를 갖추느냐, 사라지느냐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출판업종도 바야흐로 산업체제 속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체제에 편입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생존하느냐 마느냐는 객관적인 상황이 결정할 것입니다. 그동안 종수는 적지만 정말 좋은 책을 출간하던 백의출판사, 이학사, 그리고 마음 속에 출판의 의미를 새겨주던 많은 출판사들의 이름을 요즘 기억하기 힘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흥식 서해문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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