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아, 꼭 금빛 한을 풀어주마." '돌아온 전설'이 고개를 떨군다. 1985년 세계선수권 남자복식, 혼합복식 금메달을 따내며 세상에 얼굴을 알린 이래 92바르셀로나 남자복식 금메달을 비롯해 80여 차례 국제대회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이름까지 올린 '셔틀콕의 귀재' 박주봉(40). 그렇지만 그는 나경민(28·대교눈높이) 이야기만 나오면 속절없이 작아진다.
"올림픽을 1년도 채 안 남겨두고 우여곡절끝에 한 팀을 이뤘는데… 제자이자 후배인 경민이가 더 아쉽고 안타까웠을 겁니다." 96애틀랜타 올림픽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주봉은 당시 나경민과 함께 혼합복식에 참가했지만 결승에서 "늘 이겨왔던" 김동문―길영아조에게 져 은메달에 그쳤다. 그리고 그는 코트를 떠났고 홀로 남겨진 나경민은 한때 적이었던 김동문(29·삼성전기)의 파트너가 돼 은퇴한 길영아의 빈자리를 메웠다.
김동문―나경민조는 2000시드니 전까지 국제대회 10회 우승과 50연승 등 승승장구하며 혼합복식 부동의 세계 최강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나경민은 유독 올림픽에선 운이 따르지 않았다. 2000시드니올림픽 8강에서 중국의 무명 장준―가오링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다시 금메달 꿈을 접어야 했고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한국 배드민턴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런 까닭일까. 나경민은 2002부산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후 은퇴를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배드민턴협회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김동문과 함께 다시 코트에 섰고 지난해 4월 코리아오픈 이후 현재까지 14개 대회 연속 우승을 달리고 있다.
나경민의 마지막 목표는 2차례나 실패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동문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세계 랭킹 1위로 누구도 그들의 금메달을 의심하지 않지만 '시드니 쇼크'를 기억하는 그들로선 마냥 긴장을 늦추고 있을 순 없는 일. 그런 순간에 박주봉이 대표팀 수석코치로 3월 태릉선수촌에 돌아왔다. 혹시 모를 이변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 배드민턴계의 마지막 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박주봉 본인은 많이 망설였다. '주봉버거' '주봉주스' 등 '주봉'이란 말만 들어가도 불티나게 팔리는 배드민턴의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벌이던 사업까지 잠시 접고 감행한 고국행이었다. 박 코치는 "동문이는 중(전주서중), 고(전주농림고) 후배고 경민이는 올림픽에서 함께 복식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기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경민이가 눈에 밟혔다"고 했다.
박 코치가 공개한 금메달 비법은 생각지도 못한 '레크리에이션'이다. 그는 "세계최강에 오른 두 선수에게 기술이나 전략을 가르치는 것보단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가지 덧붙인 비책은 철저한 '비디오 분석'. "우리 전력은 전부 노출된 반면 상대의 전력 분석엔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상대가 누구든 꼼꼼하게 비디오 분석을 한다면 2000시드니의 전철을 밟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평소 말수가 없는 나경민은 "박 코치님이 오셔서 마음이 편하다"고만 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엔 신뢰와 믿음이 가득 담겨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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