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한국시각) 모스크바에서 열린 2004근대5종 세계선수권에서 이춘헌(24·상무)이 아시아선수로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이춘헌의 이번 은메달은 한국근대5종연맹 창립 22년만의 쾌거다. 특히 이 대회 본선진출자 32명이 모두 각국 아테네올림픽 대표로 나설 예정이어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국내 근대5종사에 한 획을 그은 이춘헌이지만 원래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데다 오로지 운동에만 몰두한 탓인지 "꿈만 같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라고 짧은 소감만 덧붙였다.
전날까지 승마(마술) 펜싱 사격 수영 등 4종목에서 승마 만점(1,200점)을 포함해 종합성적 2위를 달린 이춘헌은 이날 육상 3,000m에서 성적이 좋은 선수의 출발시간을 늦추는 '핸디캡 스타트(Handicap Start)' 룰 때문에 대회 우승자인 리투아니아의 안드리우스 자드네프로프스키스(5,608점)보다 1초 늦게 출발했다. 4종목까지 이춘헌이 안드리우스보다 4점 앞섰기 때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이춘헌은 2,700m 지점까지 엎치락뒤치락 선두권을 유지하다 100m를 남기곤 1위로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골인 30m 지점에서 아깝게 밀려 3초차로 2위에 머물렀다. 종합성적 합산 결과 안드리우스보다 12점 낮은 5,596점으로 은메달.
우리나라가 역대 세계선수권대회 주니어부문, 그것도 릴레이와 단체전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딴 적은 있지만 성인대회, 특히 개인전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춘헌이 처음이다.
광주체고 시절 수영선수에서 근대5종으로 종목을 바꾼 이춘헌의 기량이 부쩍 오른 것은 지난해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부터. 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김미섭 김덕봉 한도령을 내세워 근대5종 금메달 3개를 가져온 한국은 아테네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젊은 피'를 수혈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춘헌이다.
이춘헌은 신체조건(키 184㎝)이 헝가리 러시아 등 근대5종 강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데다 각 종목 훈련을 성실히 소화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선 개인전 24위에 그쳤지만 그 해 11월 아시아선수권에선 2관왕에 올랐다. 또 올해 열린 올림픽예선에선 한도령에 이어 2위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승마와 육상에 강하며 펜싱만 보완하면 올림픽 메달도 문제없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한국 근대5종은 현 세계근대5종연맹 최귀승(64) 부회장이 64동경올림픽에 출전한 것이 처음이며 96애틀랜타에서 김미섭(전남도청 코치)의 11위가 올림픽 최고 성적이다. 최 부회장은 "죽기 전에 올림픽 메달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벅차다"고 기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근대 5종
"근대5종 선수만이 진정한 올림픽 선수다."
근대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의 말이다. 근대5종은 쿠베르탱 남작이 제안해 1912년 제5회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근대5종은 승마(마술) 펜싱 사격 수영 크로스컨트리(육상) 등 5가지 종목을 순서대로 겨뤄 각 종목 기준점수(1,000점)에 가감점을 더해 종합성적을 따지는 복합 스포츠다.
근대5종의 원형이자 병사들의 종합능력을 평가하는 고대5종은 기원전 708년 18회 고대그리스올림픽부터 실시됐다. 당시 종목은 멀리뛰기 투창 단거리 투원반 레슬링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야구 등과 함께 근대5종의 올림픽 존폐 여부를 2005년 총회에서 최종 결정키로 하고 일단 2008베이징올림픽까지는 정식종목으로 유지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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