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라크 모험에는 미국적인 무언가가 있다. 일종의 영감을 주는 듯하면서도 고통스럽고 당혹스러운 미국적인 무언가가 있다.다른 어떤 나라도 중동 전역의 민주주의를 위해 복음을 전파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렇게 심히 잘못할 만큼 순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도 당초의 순진함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성공의 길로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곧 그러리라고 본다.
미국의 역사는 때로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거창한 꿈을 꾸지만 무모한 모험가 그룹이 악을 뿌리뽑고 황금 같은 미래를 실현하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그 길을 반쯤 가다가 갑자기 마주친 혹독한 현실을 이겨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길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명을 다시 고안해낸다. 그들은 환상을 버리고 거의 처절한 실용주의를 채택한다. 그들은 처음에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결코 실현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전보다는 나은 어떤 것을 세워나간다.
이러한 기본 패턴은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북미 해안에 상륙한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스타일이었다. 그들은 닥쳐올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지만 자본도 장비도 기술도 형편없었다. 제임스 타운에는 숙련된 기술자라고는 일곱 명뿐이었다. 그들은 겨울에 대비해 곡식을 재배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배웠고 적응했다. 정착 지원 회사들은 어쩔 수 없이 노동자를 더 보냈다. 도끼, 끌, 낫, 맷돌, 종자 등등과 함께. 마침내 식민지는 번성했다.
수 세기 후에도 이와 유사했다. 서부로 향하는 개척민들을 안내도 하고 등쳐먹기도 하는 안내인들은 개척민들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대자연이 얼마나 위협적인지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것을 알고는 놀랐다. 그들의 일기를 보면 우아한 뉴 잉글랜드 스타일의 마을을 며칠 만에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이것저것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뛰어올랐다. 그러다가 현실의 충격에 직면하게 되면 적응하고 어찌어찌 해서 뭔가 예상치 못한 것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그런 식이다. 우리는 희망에 속아서 회사를 시작하고 이 나라에 이민을 오고 텔레커뮤니케이션 망에 투자를 한다. 이러한 도전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과다한 낙관주의가 드러난다. 새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큰 틀 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새로운 양상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희망은 실망을 낳는다. 문제가 이라크에 이르면 우리는 이제 실망의 순간에 와 있다. 이처럼 틀을 확 바꾸어야 하는 순간에 비관론자들은 고소한 듯이 바라본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우리들은 절망하고 고통을 당하고 당국자들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사태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비판 과정 자체가 새로운 바람의 전제조건이다.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환상을 벗어버린 노력만이 그래도 받아들일 만한 결과를 낳는 법이다.
틀을 바꾸고 새로 시작할 순간이다. 이라크인에게 통치권을 이양하는 6월 30일까지는 끔찍한 기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새로운 출발의 시작에 서 있는 것 같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뉴욕타임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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