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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행복한 가족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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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행복한 가족의 조건

입력
2004.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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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한 딸의 이야기를 몇 해 전 나의 칼럼에 쓴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곤 한다. 형제들 끼리 어머니 간호를 분담하는 의논을 하다가 그는 이런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삼십 년 이상 키워주고 보살펴주신 엄마에게 나도 뭔가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나의 1년을 엄마께 드리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아침 일찍 친정으로 출근하여 하루종일 엄마와 지내다가 저녁에 우리 집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때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엄마에게 나의 1년을 드리겠다"는 결심이 사랑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따뜻한 남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평생 열심히, 고단하게 살아 온 아내가 큰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60대의 남편은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은퇴를 하면 아내의 노고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

은퇴한 그는 요즘 커피를 끓여 아내의 침대에 갖다 주는 것이 큰 기쁨이다.아침잠이 많고 몸이 약한 아내가 새벽에 일어나 시부모 봉양과 아이들 도시락 싸기에 바쁘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돌아가시고 자녀들은 독립하여 부부만 남은 집에서 그는 기꺼이 '여왕의 시종'처럼 커피를 대령한다.

다른 한 분은 나의 고교 은사인데, 그 댁에 갔던 제자들은 선생님의 식탁 차리는 솜씨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자신이 심장병으로 6개월이나 병석에 있는 동안 정성을 다해 간호해 주신 사모님께 보답하기 위해 가사를 돕기 시작했고, 특히 아침 식사 준비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모님 역시 우리의 은사여서 우리는 두 분의 따뜻한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배웠다.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족의 조건은 무엇일까.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상대의 헌신에 보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은 가르쳐 주셨다.

인연만으로, 혈연만으로 가족이 될 수는 없다. 서로에 대한 헌신과 감사가 없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사랑만 있으면 될까. 상대의 헌신에 감사하고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의 가정이 참다운 가정인지 각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족의 조건을 갖추기 위한 가정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점검해 봐야 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숙명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부모의 희생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교육을 시키는 것에는 소홀했다. 자녀들은 부모의 희생은 공짜라고 여기게 됐다. 이것이 가족 파괴의 시발점이 됐다.

날로 높아 가는 이혼율, 젊은이들의 이기주의, 노부모 유기 등은 미숙한 가정의 부산물이다. 자신이 가족을 위해 헌신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헌신에 대해 무감각한 자녀들을 키워내고 있는 가정이 문제다.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행복한 결혼에 성공하고, 성숙한 시민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내 주장만 앞세우고 상대를 생각할 줄 모르는 편가르기,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냉혹함, 뿌리 없이 흔들리는 가치관 등도 부모들이 일방적으로 사랑 퍼주기를 해 온 영향이 크다.

부부 관계는 젊은 시절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쉬운 시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면서 쉬워지는 점도 있지만 더 어려워지는 점도 있다. 신혼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하던 부부들은 노년에 이르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을 고통스러워 하기도 한다.

젊어서 늦잠 한번 못 잔 아내를 위해 침대로 커피를 대령하는 남편, 아내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가사를 돕는 남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 한다. 남편들만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아내들도 남편의 헌신에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가정은 소중한 곳이다. 그러나 헌신과 감사가 없는 가정은 이미 해체된 가정이다.

장명수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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