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총아인 컴퓨터는 이진법으로 움직이는 기계다. 이진법은 0과 1, 두 개의 기본수로 이루어진다. 일상 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십진법에는 0부터 9까지 10개의 기본수가 있고, 9에서 10으로 넘어갈 때 한 자리 수에서 두 자리 수로 올라간다.이에 반해 0과 1을 기본수로 갖는 이진법에서는 2만 되어도 두 자리 수로 바뀐다. 십진법의 수 2와 3은 이진법에서 각각 10과 11로 표현되고, 십진법의 수 4는 이진법에서 세 자리 수 100으로 표현된다. 이와 같이 이진법에서는 자리수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주역은 주(周)나라 시대의 역(易)으로,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 심오한 철학서이다. 공자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만큼 애독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한 주역은 이진법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주역의 기본 단위인 효(爻)에는 양(―)과 음(--)이 있는데, 각각 1과 0에 해당한다.
0을 나타내는 음(--)은 양(―)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둔 모양인데, 여기에는 비어있다는 0의 의미가 들어있다. 주역에는 6개의 효(爻)를 조합하여 만든 64개의 괘(卦)가 있다. 각 효에는 양(―)과 음(--), 2가지가 올 수 있으므로 6개의 효를 조합하는 방법은 2를 6번 곱한 64가지가 된다.
서양에서 이진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이다. 중국에 선교사로 가있던 라이프니츠의 친구는 '주역본'에 나오는 도해를 라이프니츠에게 보내주었다. 여기에는 이진법의 원리에 따른 64개의 궤가 원과 정사각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도해를 받은 라이프니츠는 이미 오래 전 동양에 이진법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동양 수학을 극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네 귀퉁이에는 건(하늘), 곤(땅), 감(달), 이(해), 네 개의 괘가 그려져 있다. 실제 3개의 효를 배열하여 만들 수 있는 경우는 모두 8가지로, 초기의 태극기에는 8괘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 양(―)과 음(--)에 각각 1과 0을 대응시키면 8괘를 위 표와 같은 이진법의 수로 표현할 수 있다.
고대 동양 철학의 산물인 주역을 구성하는 원리 이진법이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최첨단 기계인 컴퓨터의 계산 원리로 부활한 것을 보면서, 비록 중국의 수학이기는 하지만 동양 수학의 저력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협찬 : 한국과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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