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사회학자이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참여 지식인인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사진)의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 1958년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제국주의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던 부르디외는 카메라로 당시 알제리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철학교수를 꿈꾸던 그가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꿔 적극적인 사회참여 활동을 벌인 것도, 이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가난한 현실체험이 한 뛰어난 지식인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진전의 의미가 각별하다.
대림미술관이 카메라 오스트리아와 공동 기획으로 6월 11일부터 7월 18일까지 여는 '피에르 부르디외 사진전'에는 지난해 부르디외 1주기를 맞아 프랑스에서 순회 전시됐던 사진들이 나온다. 1958년부터 2년 여 부르디외가 찍은 150점의 흑백 사진으로,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사람들과 살림살이, 거리 풍경이 담겨 있다.
이번에 전시될 부르디외의 사진들은 순간 포착이 예리하다든지, 구도에 창의성이 번뜩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사진들에서는 범상한 여느 사진전에서 만나기 어려운 무게감이 느껴진다. 재단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지만 그 속에는 빈한한 식민지 풍경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비참과 분노 따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진들에 '한 뛰어난 학자가 이론을 세우는 토대가 되었다'는 '주'를 붙일 수 있어 더욱 새롭다. 사진은 삶의 터전을 잃고 집단 이주된 알제리인 캠프, 전통 농업을 잃고 그 캠프에서 어렵게 삶을 꾸리는 소녀, 알제의 거리에서 자동차 옆에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 등을 정직하게 포착했다.
프랑스 남부 베아른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부르디외는 58년 알제리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징집을 당했다. 부르디외는 파견지인 알제리 대학에서 철학과 조교로 근무하게 된다. 거기서 본 알제리는 파리의 지식인들이 늘어놓는 말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58년에 '알제리 사회학'이라는 작은 책을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생 사회학을 연구할 결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학문에서 현실연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게 됐고 민속학을 거쳐, 사회학으로 관심을 옮겼다. 그의 빈곤, 실업 문제연구나 말년의 세계화·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은 모두 알제리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사진들은 현장방문, 설문조사 등과 함께 진행된 당시 연구작업의 하나. 알제리 수도 알제의 미티드야 평원에서 노동자들이 포도나무에 유황을 살포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알제리의 노동과 노동자들'(1963년) 표지에 실리는 등 일부는 그의 책표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들은 전시회가 마련되기 전까지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이번 한국 전시회에 맞추어 12일 오후 2시에는 미술관 4층 강의실에서 부르디외의 학문과 알제리를 주제로 한 강연회도 열리고, 매일 피에르 부르디외 인터뷰 내용을 담아 2001년에 만든 9분짜리 영상물 '사회학은 격투기다'도 상영한다. 관람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초·중·고생 2,000원. (02)720-0667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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