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그리고 이번 총선 시점까지 우리 사회 개혁의 핵심 화두가 정치였다면 요즘의 개혁 화두는 단연 언론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언론이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언론의 의제 설정이란 바로 사회의 정치환경 조성이라는 말과 동의어다―기제라는 점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여러 다른 이유도 있지만 오늘날 언론 개혁이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로 등장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나쁜 의미로 정치세력화된 언론이 가지고 오는 사회적 폐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조중동' 같은 신문이 언론개혁의 주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개혁의 대상은 말할 나위 없이 '조중동' 같은 신문만은 아니다. 방송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다만 방송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양상은 '나쁜 의미로 정치세력화된 신문'들과는 다르며 이 때문에 작금의 언론개혁 흐름에서 방송 부분이 제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발표한 감사 결과에서 감사원은 한국방송공사(KBS)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시스템의 부재로 KBS가 국민의 수신료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했다면서 '이사회 및 감사의 권한 강화' '지역국 구조조정' '수신료 현실화' '각종 복지후생 제도 축소' 등을 개혁 처방으로 주문했다. 감사원의 지적 중 일부는 방송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방송사에 대한 공적 감시체제 및 시민참여 확대라는 측면에서 KBS가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감사에서 감사원이 노조 전임자 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해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감사원이 KBS에 해당되지 않는 지침을 적용하는 잘못을 범한 것도 문제다. KBS는 정부투자기관 관리지침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 KBS에 대해 감사원이 지적한 문제들 중 일부는 이미 KBS 내부적으로도 오랫동안 논의가 되어 오고 있는 문제들이다. KBS는 감사 결과가 현재 진행 중인 내부 개혁 과제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개혁은 스스로가 반성하고 나서서 하는 것이 제일이다. 감사원의 지적은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 타당한 점이 있다. 따라서 KBS의 할 일은 타당한 지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감사원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당당하게 과제를 추진해나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기회에 방송개혁이 진정 무엇인가를 KBS가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를 계기로 조선 동아 같은 신문들이 온갖 비난을 KBS에 쏟아내고 있는 점, 그리고 한나라당이 수신료 분리징수, KBS2 TV 민영화, 사장 인사청문회 등으로 기어이 KBS를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나 비판은 감사 결과와 더불어 합리적인 방송개혁 청사진에 기초한 주문이라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그동안 이들 신문이 언론의 주 개혁대상으로 낙인 찍혔던 것을 방송에 화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또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패배와 탄핵 국면에서 받은 국민적 비난을 방송에 앙갚음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개혁'의 대상이 되면 대체로 방어적 내지 적대적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조중동 같은 신문들이 특히 자신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언론개혁'이라는 사회적 명제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전혀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KBS가 개혁 과제를 실천함에 있어 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언론·방송 개혁의 진전을 위한 성숙하면서도 모범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좀더 새로운 개혁의 움직임을 KBS에 기대한다.
/김평호 단국대 방송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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