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의 만찬은 '노래 한마당'이 펼쳐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여권 지도부가 다 모인 '국정 2기 단합대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특히 42세 이하 386세대 당선자 33명이 운동권 노래로 많이 불렸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해 달라진 청와대를 실감케 했다. 이들이 주먹을 쥐고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가사를 외치는 순간 상당수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중국식 코스 요리와 포도주를 곁들인 만찬 석상은 250여명 참석자들의 파안대소와 노래 한 마당으로 왁자했다. 사회를 맡은 김부겸 의원은 노 대통령에 대해 '막내 당원' '노 동지' 등으로 표현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먼저 김희선 의원의 주도로 여성 당선자 등 20여명이 '만남'을 합창하자 권양숙 여사가 거들었다. 이광철 당선자는 '코믹 심청가' '여러분' 등 3곡을 열창했고, 곧이어 386 당선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무용학과 교수 출신인 강혜숙 당선자는 춤을 추기도 했다.
노 대통령도 '허공' 을 부르고 앙코르 박수를 받은 뒤 '부산 갈매기'를 다시 불렀다. 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대통령은 영빈관이 꽉 찬 것을 보면서 밥 안 먹어도 배 부른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너무 좋다"며 모처럼 흥겨운 기분을 숨기지 않았지만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오늘은 메모를 해왔다"고 말한 뒤 인사말에서 총리 지명 문제와 관련 김혁규 전지사 카드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강력히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맺음말에서 "우리도 100년 가는 정당을 한번 해보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또 초선 의원들을 의식, "1년간을 삭이더라도 뼈있는 말은 나중에 하자, 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손해"라는 충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바른 말과 쓴 소리는 꼭 필요하나 대부분 보스정치 시대 언로가 막혀 있던 당 구조 시절 얘기로 우리당과 정부에는 독재자가 없는 만큼 비판적인 얘기는 언제든 내부에서 먼저 얘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하며 투쟁과 저항의 정치보다 대안·창조·생산성의 정치가 중요한 흐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참석자 전원에게 영국 노동당의 실용적 사회개혁 정책 방향 등 이른바 '제3의 길'을 담은 앤서니 기든스의 책 '노동의 미래'와 함께 '부부 시계 세트'를 선물했다. '노무현 시계'에는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날 만찬에는 총리 지명 논란의 당사자인 김혁규 당선자는 재·보선 지원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30일 여권 내부에서는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 것이 화제가 됐다.
민주화운동권 출신인 정봉주 의원은 인터넷 신문 '서프라이즈'에 올린 만찬 참석기에서 "상상이나 했겠는가. 군사독재 정권에는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빨갱이나 반정부 과격 분자로 몰려 감옥으로 끌려가게 했던 그 노래가 이제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한 복판인 청와대 영빈관에서 울려 퍼지게 될 줄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盧, 머리스타일도 실용?
"대통령 머리가 왜 저렇게 됐지?"
29일 열린우리당 당선자 등의 청와대 만찬에서는 이런 수군거림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급기야 안영근 의원이 만찬 도중 마이크를 잡고는 "내가 '신라의 달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대통령의 머리가 그 영화에 나오는 '깍두기'(조직폭력배를 은유하는 말) 처럼 됐는데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질문해 주변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옆머리를 짧게 자르는 바람에 방송 화면과 사진에서 측면 모습이 잡힐 때는 머리 속이 하얗게 비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즉답하지 않았지만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노 대통령이 매일 아침 코디네이터로부터 머리를 손질받는 데 15분 정도씩 걸린다"며 "머리 손질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탄핵 기각 선고가 있던 14일 아침에 아예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다고 복귀 후 첫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밝혔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직무정지 2달간 특별히 머리에 신경을 안 썼는데 다시 아침마다 시간이 낭비되니 답답했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평소 청와대 밖에서 일하는 이발사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 불러 이발을 한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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