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인간배아 줄기세포 복제 성공 사실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이제 연구가 시작단계에 들어선 것'이라며 성급한 낙관을 경계했다. 그래도 난치병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은 희망에 들떠 다음 성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음 계단을 밟기 전 풀어야 할 과제는 기술이 아닌 윤리 분야에서 떠올랐다. 국내 시민단체나 윤리학자들의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영국에서 발행되는 과학저널 '네이처'의 5월6일자 기사. '한국의 줄기세포 스타들, 윤리적 문제에 발목을 잡히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황 교수팀이 연구에 사용한 난자의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선 4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올해 1월29일 '생명윤리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공포돼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 이를 계기로 생명윤리에 관한 논란을 세 개의 키워드 별로 살펴본다.
키워드 1: 난자의 자발적 기증
'네이처'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황 교수팀이 연구에 이해관계가 있는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았는지의 여부. 황 교수의 논문을 실었던 '사이언스'도 5월14일자에서 '네이처' 기사에 대해 "황 교수는 의혹을 전적으로 부인했다"고 밝히면서도 "과학자들은 앞으로 윤리적으로 불확실한 회색영역을 피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생명윤리학회는 22일 총회에서 '의학과 생명과학기술 연구는 생명윤리 기준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황 교수팀이 난자의 출처 등에 관해 해명하고 공개 토론회를 가질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치료를 목적으로 한 배아 연구를 진행할 때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인간 난자를 구하는 것이다. 난자를 추출하기 위해 배란 촉진제가 사용되는데 시술 자체가 고통스럽고 혈관 경직이나 뇌졸중의 위험도 있어 선뜻 나서는 여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생명과학에 관한 국제 윤리강령은 '이해관계'에 있는 여성으로부터 연구에 이용할 난자를 제공받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내년 시행될 우리나라 법률도 '누구든지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정자 또는 난자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황 교수의 경우 난자 제공자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기증동의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 그러면 의혹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구영모 교수는 "공개할 수 없다고 무조건 회피하는 태도는 의혹을 키울 뿐"이라며 "난자 제공을 통해 어떤 반대급부도 받을 수 없음을 확실히 한 동의서 양식이라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워드 2: 냉동 잔여배아 연구
배아에 관한 논란은 생명, 혹은 인간에 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된다. 배아를 인간 개체로 본다면 이를 임의로 만들거나 파괴하는 것 역시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비켜가기 위해 대두된 대안이 '냉동 잔여배아'다. 불임시술 등을 위해 냉동보관한 배아 중 통상 유효기간으로 설정된 5년이 지나 폐기될 배아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내 과학자 중 대다수는 치료 목적에 한한 잔여배아 사용에 대해 찬성하는 추세다. 정부도 5년이 지난 잔여배아는 물론 기증자 등 동의권자가 허용할 경우 그 전에도 난치병이나 불임치료를 위한 잔여배아 연구를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간 여부가 결정되지도 않은 배아를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예로 가톨릭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홍석영 연구원은 22일 열린 한국생명윤리학회 토론회에서 "인간배아는 수정과 동시에 완전한 인간 생명"이라며 "잔여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워드 3: 체세포 핵이식
잔여배아에 관한 논란은 결국 '배아가 인간인가'하는 오래되고 풀리기 어려운 논란으로 되돌아갈 전망이다.
'반인반수', 즉 '키메라'의 탄생에 대한 가능성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우리나라 법률은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에 한해 체세포 핵이식을 허용하면서 '인간난자―동물 체세포' 이식은 금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물난자―인간 체세포' 이식은 일정 연구 목적을 위해서는 허용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10월 '정부의 생명윤리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 후퇴를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종간 핵이식을 법률로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것이다"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황 교수의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 난자를 추출해 연구하는 데는 많은 절차적·윤리적 문제가 있어 과학자들은 편의상 동물 난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새로운 종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결코 무시할 수 없어 논란은 계속 가열되는 중이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도움말 한국생명윤리학회 황상익 회장, 울산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구영모 교수>도움말>
●생명윤리법 내년부터 시행 "수박 겉핥기" 우려
전문가들은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지나치게 적은 영역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담고 있다고 우려한다. 한 예로 '인간복제 금지'나 '체세포 복제 배아'에 관한 조항은 각각 두 개에 불과해 급격히 발달하고 있는 복제 영역에 대한 규제가미흡한 실정이다.
유네스코가 정한 생명윤리의 영역은 임신중절, 죽음의 정의, 유전자변형생물(GMO), 장기이식 등 삶과 죽음에 대한 넓은 영역을 포함하므로 '생명과학기술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로 명칭을 바꿔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배아복제 연구나 체세포 핵이식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한 연구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는 대통령 산하 자문기구 '국가윤리위원회'의 구성도 재검토 대상이다. 관계부처 장관 7명, 과학기술계 전문가 7명, 철학 종교계 등 일반인 대표자 7인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정부측이 상대적으로 진보적 자세를 취하는 과학계의 입장에 동의할 경우 이를 막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 내 생명윤리 관련 조직 신설도 시급하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3월초 '생명윤리·안전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해 운영하면서 행정자치부에 '생명윤리과' 신설 신청을 했으나 "정부 조직 정비 후로 미루자"는 답을 받았다.
/도움말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장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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