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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모, 아테네행 막차타고 "이번이 마지막"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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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모, 아테네행 막차타고 "이번이 마지막" 불끈

입력
2004.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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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금(金)잔치는 시작됐다."무려 100만발이 넘는다. 매일 300발씩 쏘고 또 쏘고, 1993년 첫 국가대표가 된 이래 꼬박 11년을 지겹도록 동그란 과녁(지름 80㎝)만 응시했다. 50m 떨어진 지점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지름 8㎝짜리 노란색 과녁(10점)에 화살을 '팍' 꽂는 게 '돌아온 활잡이' 박경모(29·인천계양구청)의 인생 최대 목표였다.

그가 26일 우리 나이로 서른 즈음에 아테네올림픽 양궁 대표로 뽑혔다. 그것도 한승훈(31·충북체육회)과 최후의 한발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0.5점차로 아테네행 막차를 탄 대표팀 맏형이다.

"끝날 때까지 몰랐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담담히 소감을 밝힌 그지만 경기 집중을 위해 쓴 노란 선글라스도 웃음을 머금은 그의 눈망울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오히려 힘이 솟았다"고 털어놓는 게 듬직하다.

그의 첫 올림픽 출전이 주목 받는 까닭은 세계선수권 개인(93)·단체(2001, 2003) 우승, 아시안게임 개인·단체(94) 우승에 이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다면 양궁 역사상 처음으로 양궁 '그랜드슬램'의 대업을 이룰 수 있기 때문.

양궁 역사를 새로 쓰는 중책을 맡았지만 그에게 첫 올림픽 출전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93세계선수권,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 등을 제패한 '10대 신궁(神弓)'으로 이름을 떨치며 94, 95년 최우수선수로 뽑힐 만큼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로 떠올랐던 그였다.

하지만 과녁이 잘 보이지 않는 기나긴 슬럼프가 그의 발목을 잡는 사이 두 차례 올림픽(96, 2000)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방황도 했고 제가 관리를 못한 탓이죠. 97∼98년엔 활을 놓을 생각도 했어요."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무작정 좌절만하고 있을 순 없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99년 팀을 옮긴 뒤 다시 시작했다. "분위기를 바꾸니까 심적으로 안정이 됐어요. 또 사람들 뇌리에 잊혀진다는 생각 안하고 제 자신만 들여다보고 쏘기 시작하니까 잘 맞던데요."

그의 재기 노력은 다시금 빛을 발했다. 2001년 세계선수권 3위에 오르더니 지난해엔 유럽최종그랑프리 우승, 아시안게임 준우승(개인)을 일궜다.

그리고 "올림픽 티켓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그의 말처럼 초등학교 4년 때 시작한 양궁인생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회가 찾아왔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할 겁니다.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죠, 파이팅!" 그의 화살에 꿰어올 아테네 노다지가 기다려진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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