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페라단이 제작한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치아'가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했다. 민간 오페라단 중에서 작품을 잘 만든다는 평을 들어온 단체의 작품인데다, '제 2의 마리아 칼라스'로 불리는 루치아 알리베르티, 우리나라 대표급 바리톤 고성현 등 주역 가수의 진용이 화려해 더욱 관심을 모은 무대다.첫 이틀 공연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몇몇 주역 가수는 대단히 훌륭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특징이 없고 극적인 분위기도 살리지 못한 연출(마우리치오 디 마티아), 어설프고 미숙한 합창(의정부시합창단), 자주 삐끗하고 소리도 거칠어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오케스트라(드와이트 베넷 지휘 프라임 필)는 오페라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했다.
주역을 더블캐스팅한 이번 공연에서 엔리코 역 고성현은 단연 발군이다. 유럽에서 맹활약하다 4년 만에 국내 무대에 선 그는 더욱 여유 있고 당당해졌다. 주인공인 루치아 역의 알리베르티, 그리고 루치아의 연인인 에드가르도 역의 테너 배재철을 오히려 압도했다. 27일 엔리코로 나온 최종우 또한 흠 잡을 데 없는 최상급 노래와 연기로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배재철은 놀랄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지녔다. 연기만 조금 보완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루치아의 가정교사인 라이몬도 역의 베이스 변승욱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든든한 조역이다.
기대에 못 미친 건 알리베르티다. 그는 스칼라극장에서 루치아 전문가수로 날렸던 소프라노이지만, 우리가 본 것은 전성기를 지난 대가의 관록이었다. 그의 노래는 자주 흔들렸고 객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약한 편이었다.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연출이다. 특히 무너진 성과 바위가 널린 야외장면 세트를 계속 쓰면서 달랑 의자 두 개 갖다 놓고 엔리코의 거실이라고 우기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루치아는 원수지간 남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율도 많아서 가슴이 미어지는 감동을 느낄 만한 작품이다. 드라마가 죽어버린 무기력한 연출 때문에 음악의 효과가 떨어지는 게 안타깝다. 공연은 30일까지.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