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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21>체스터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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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21>체스터튼

입력
2004.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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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5월29일 영국의 언론인 겸 작가 길버트 체스터튼이 런던에서 태어났다. 1936년 몰(沒). 체스터튼은 25세 때 '디베이터'지의 칼럼니스트로 언론계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이 '까불거리는 기자'(rollicking journalist)에 불과하다고 늘 겸손을 떨었지만, 체스터튼이라는 이름은 20세기 초반 영국 지성의 눈부신 섬광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누구에게도 질 마음이 없었던, 그리고 지지 않을 능력을 갖추었던 뛰어난 논쟁가였지만, 유머와 기지와 역설로 그득 찬 그의 독설들은 근원적 따스함으로 휘감겨 있어서 논쟁 상대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당대의 주류 견해를 가차 없이 공박했다는 점에서 체스터튼은 알짜배기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계 주민(보어인)을 영국군이 공격함으로써 벌어진 보어전쟁에 반대한 극소수의 영국 저널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개량될 수 있고 개량돼야 한다는 우생학적 사고는 그 시절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유행병처럼 번졌지만, 체스터튼은 여기 단호히 반대했다. 그리고 그 뒤의 역사가 경험한 나치즘의 우생학적 실천은 체스터튼의 이 '반동적' 견해에 담긴 지혜를 증명해주었다.

그의 논적이자 친구였던 버너드 쇼에 따르면, 체스터튼은 '거대한 천재'(colossal genius)였다. 중의법을 사용해 체스터튼의 비만을 살짝 놀려먹은 말이기는 하지만, '까불거리는 기자' 체스터튼은 사실 시, 소설, 평론, 전기 등 문학의 거의 모든 장르에서 거대한 천재를 보여주었다. 그는 그 천재의 극히 일부분을 추리 소설에 할애했고, 그것이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브라운 신부의 천진함'(1911)으로 시작된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 체스터튼은 이 시리즈를 쓰고 있던 1922년 가톨릭에 귀의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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