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조용하다. 침묵이 꽤나 길다.총선 직후만 해도 "당 정체성 좌향좌"등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던 소장파들이 최근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닫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27일 상임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렇다 할 발언 없이 내내 침묵을 지켰다. 그 이전 회의에서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백배사죄"를 주장하고,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는 "이전에 돈봉투 살포가 있었다"고 폭로하는 등 당내 파문의 진원지 역할을 도맡았던 그다.
남경필 의원은 김덕룡 원내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석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그는 취임소감을 밝히며 "이제 더 이상 나는 소장파가 아니다"라며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고 했다. 조용하기는 정병국 권영세 의원도 마찬가지다. 소장파들의 행보에선 뭔가 변화의 기미가 느껴진다.
남경필 의원은 "그동안 우리가 소리만 질렀다면 이제 몸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원희룡 의원은 "보다 큰 틀을 생각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했다. 소장파들의 침묵은 앞으로도 꽤 길어질 것 같다.
이 같은 소장파들의 행보를 박형준 이성권 당선자 등 개혁적 초선 당선자들에 역할을 넘겨주기 위한 과도기적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이른바 '소장파 세대교체'다.
"당내 3선과 영남권 의원들의 곱지않은 시각을 의식한 잠수"라는 얘기도 있다. 당내엔 소장파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의원들이 꽤 있다. "이회창 총재, 최병렬 대표 시절 양지만 좇다가 등에 칼 꽂기를 반복하더니 이번에 또 박근혜 대표 옆에 붙었다", "말만 앞세우고 대내투쟁만 하려한다"는 등의 거친 비판을 소장파를 향해 쏟아낸다.
한나라당이 17대 총선이후 그나마 변화의 모습을 띈 데는 소장파들의 기여가 컸다. '60대 용퇴론'으로 세대교체의 물꼬를 텄고 최병렬 체제를 무너뜨리고 박근혜 체제를 세우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총선이후 수요공부모임를 만들어 초선들을 끌어들이며 외연을 키웠다. 적어도 외형상 한나라당 소장파는 성공한 당내 그룹이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한 당 관계자는 "이른바 소장파 의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철학과 방향으로 당을 이끌어갈지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각계에서 전문적인 초선 의원들이 대거 수혈되면서 말만 앞세우는 기존 소장파들로서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의 이 같은 지적을 소장파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원희룡 의원은 "이거 해주세요, 저건 안돼요라고만 하던 단계는 지났다"며 "앞으로는 당의 집권이란 큰 틀에서 사고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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