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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회남자-한대 지식의 집대성/이석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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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회남자-한대 지식의 집대성/이석명 지음

입력
2004.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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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한대 지식의 집대성이석명 지음

사계절 발행·1만2,000원

공자 맹자는 워낙 유명하고, 노자 장자도 익히 들어봤는데, 회남자는 낯설다. '회남자(淮南子)'는 진시황의 제국이 무너진 뒤 다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 초기에 씌어진 고전으로, 한의 제후국인 회남국 왕 유안이 당대 학자들을 불러모으고 직접 저술에 참여해 펴낸 책이다. 한 고조 유방의 손자이자 5대 황제 무제의 숙부인 유안은 한 제국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어 기원전 139년 조카인 무제에게 바쳤다.

젊은 학자 이석명(고려대 강사)씨가 쓴 '회남자―한대 지식의 집대성'은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이 고전의 가치와 의미를 파헤친 연구서다. 이 책이 씌어진 시대적 배경과 맥락, 핵심 사상과 개념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중국 문화의 기틀이 한대에 완성됐으며, 그때까지 축적된 사상과 문화와 학문을 집대성한 것이 회남자라고 소개한다. 따라서 회남자를 읽는 것이야말로 중국 문화의 원형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회남자는 제왕의 통치철학으로서 이른바 '황로학(黃老學)' 뿐 아니라 천문·지리·종교 ·군사·의학 등 당대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회남자가 이처럼 다양한 논제와 웅대한 스케일을 지니게 된 것은 자연의 이치와 인간 삶의 근본 원리인 도를 알고, 이를 구체적 현실에 구현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소산이다.

황로학은 '황제와 노자의 학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고대 중국의 전설적 제왕인 황제로 대표되는 정치철학을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한 노자의 도가사상과 결합한 것이다. 황로학은 회남자에 이르러 완성되는데, 그 핵심은 '적극적 무위론'이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백성의 본성을 살리면서 움직이는 행동의 철학이라고 본 것이다.

2000년 전 중국 고전이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이 책은 오늘날 현실 정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단서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무위정치론에 따라 제시하는 통치자의 기본 조건이 그러하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작은 생선을 구울 때 자꾸 이리저리 뒤집으면 부서져서 못 쓰는 것과 같이 통치자는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고, 인재 등용과 시스템 구축을 통해 조용히 무위로써 다스리라는 충고다. 역대 누구보다 강력한 개혁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회남자를 읽으면, 그의 실험과 의욕이 어떤 방식이라야 무리없이 실현될 수 있으며, 자칫 빠질 수도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회남자에 대한 국내 연구는 드문 편이다. 중국에서도 비교적 최근에야 이 고전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시중의 기존 관련 서적이 번역이나 1차적 해석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회남자의 시대적 배경과 토대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 본격적 저술로서 가치가 있다. 학문적 연구서이지만 어렵지 않게 씌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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