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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파병결정 美 아닌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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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파병결정 美 아닌 우리가

입력
2004.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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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5월이 지나간다. 5월은 잔인한 달이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여 어린이 날도 있고, 어버이 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고, 성년의 날도 있다. 1년 열두달 365일 가족을 사랑하는, 스승을 존경하는, 그리고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닐진대 그토록 많은 날들이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한국 현대사에서도 5월은 잔인한 달이다. 1961년 5월의 쿠데타와 1980년 5월의 쿠데타는 국민의 힘으로 어렵사리 만들어낸 봄의 공간을 다시 얼어붙게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아물지 않은 광주의 상처를 남겨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잔인한 5월을 맞이하였다. 용천에 보내는 동포애의 온정이 식기도 전에 이라크에서 날아든 엄청난 소식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리고 베트남전을 경험했던 우리에게 이라크 파병의 고민을 안겼다.

1961년 5월 16일 아침, 유엔군 사령관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대답했다. '유혈사태를 원하지 않는다'고. 더욱이 북한이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지금 적 앞에서 우리끼리 총질을 할 수는 없다고. 유엔군 사령관은 워싱턴에 전문을 보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완성이 북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권은 너무나 허약했기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정권이었다는 것이 대통령의 대답이었다는 것이다.

1980년 5월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전문을 보냈다. '한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을 지지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스스로 분열되어 있는 민주화 세력들을 지지하는 것은 한국에서 혼란만을 더 부추길 뿐이다.'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광주가 피로 물든 다음 미국은 새로 등장한 군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이들밖에 없다고.

1980년 광주를 경험한 우리는 외세에게 책임을 묻는다. 왜 한국 민주주의의를 짓밟은 사람들을 지원했느냐고. 그리고 더 나아가 이라크 사람들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분명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왜 우리 젊은이들을 사지에 몰아 넣으려고 하는가를.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시 미국이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가 파괴되어 가는데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달려 있었던 61년의 5월. 신군부가 또 다른 유신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분열과 갈등을 거듭했던 80년의 5월. 과연 그 책임은 외세에게만 있는 것일까?

이라크 파병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경제개발을 위한 단물을 주었지만 남의 피를 대가로 얻은 경제개발은 결코 자랑스러운 훈장이 될 수 없다. 이라크 전쟁 참여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하에서 한국에 어떠한 형태로든 이익을 주겠지만 이라크의 참혹한 현실 위에서 얻은 이익은 결코 역사의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힘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실리만을 좇는다면 우리는 베트남전 참전으로 얻었던 오명을 다시 한번 뒤집어 쓸 것이다.

다시 한번 잔인한 5월을 생각한다. 수많은 날들을 인위적으로 만든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날들을 잔인하게 느끼도록 하는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스승을 존경했는가? 아니면 그들을 부담이라고 느끼며 살아 왔는가? 아름다운 5월을 만들고 싶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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