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홍콩에서 월스트리트저널 주최의 '25년 후의 아시아'세미나가 열렸는데, 그 때 유엔 인구국장이 고령사회의 문제점을 발표하는 것을 들었다. 발표의 요지는 아시아의 출산율 저하와 인구고령화 추세에 따른 복지 문제였다. 그는 고령화가 가장 심각하게 사회문제로 대두될 나라로 한국을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제시하는 복지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2026년에 한국인은 81세까지 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죽은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농담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전 CEO 환경포럼에서 오종남 통계청장의 '통계로 본 세상 이야기' 특강을 들었다. 오 청장은 통계 속에 국가와 조직은 물론, 인생이 갈 길이 명확히 제시된다고 설명했다. 평균수명의 변동을 읽으며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2001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7세로 과거 25년 동안 13세가 늘었다. 그러나 현재 52세인 사람이 25년 후, 즉 77세에 이를 때쯤이면 평균수명은 80세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오 청장은 단언한다. 누가 이들을 먹여 살릴 것인가. 오 청장은 우리의 사회보장제도와 선진국의 추세를 비교하며 그 해답을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통계니 믿으란다.
■ 오 청장은 정말 기가 찰 이야기를 해 줬다. 2002년 우리나라 여성이 낳은 평균 아이 수는 1.17명으로 세계 최저수준. 40년 전 6명과 비교된다. 그런데 대체출산율로 통하는 평균 2명에 이른 것이 1983년이었다고 한다. 이 해에 정부는 엉뚱한 정책을 시작했다. 셋째 아이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엄마가 둘 낳기도 싫다는 판에 정부는 셋째 못 낳게 하기 정책에 뒤늦게 발동을 건 것이다. 정책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미래 예측인데, 너무도 미래를 잘 말해 주는 명확한 통계를 놓고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이다.
■ 요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이 나오면서 병역의무를 다하는 사병의 복지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것도 오 청장의 통계적 발상을 빌리면 가야 할 길이 명확할 듯싶다. 1980년 대학 취학률은 16%였으나 2003년에는 92%에 이르렀다. 정말 부잣집에만 있던 자가용(214명당 1대)이 가족 필수품(5명당 1대)이 됐다. 1983년에 휴대폰 소지자가 2,730명이었는데 3,300만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달라져 버린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옛날에는…"이라는 말로 침묵하게 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국방도 교육도 노사문제도 통계 속에 보다 명확한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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