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국무총리가 청와대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각료제청 거부 의견서'는 언론보도를 취합한 것으로 27일 밝혀졌다. 고 전총리가 정치인과 학자 등 자신의 자문그룹에게 의견을 들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언론기사 스크랩'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실제 고 전총리가 전달한 문서에 나온 내용은 한국일보(21일자 A3면) 보도 등 여러 신문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문서에서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는 경희대 Y교수와 고려대 J교수는 본보가 실명으로 보도한 윤명선 교수와 장영수 교수의 학문적 의견을 인용한 것이다. "차기 총리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힌 여당 C의원 역시 본보가 실명으로 보도한 정장선 의원이다. "시급히 개각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여당 J의원은 머리글자는 다르지만 역시 본보가 실명 보도한 안영근 의원의 코멘트를 인용한 것이다. 문서에 등장한 당사자들도 총리실과 접촉한 사실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고 전총리 자문에 응한 사람이 누구냐" 는 사실 등을 놓고 정·관계가 설왕설래하는 것과 이 내용이 엄청난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오버 센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고 전총리쪽이 의도를 갖고 특정언론에 흘린 게 아니냐"며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자 "쓸데없는 호들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고 전총리의 한 측근은 "주요 현안에 대해 신문 등을 통해 여론을 정리해보고 판단에 참고하는 것은 고 전총리의 오래된 스타일"이라며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결국 고 전총리가 평소의 습관대로 언론 보도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여론 전달 차원에서 청와대측에 건넨 것이 "자문 인사와 유출 관련자 의혹" 등으로 증폭, 확대 재생산 되면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인 셈이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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