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글쎄, '개그콘서트'를 늘 TV로만 보다가 오늘 부산에서 녹화를 한다고 해서 직접 보려고 왔는데 자리가 없다니. 입석표라도 구할 수 없나?"25일 KBS 2TV '개그콘서트' 공개 방송이 열린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KBS홀 입구에서는 서진운(66)씨와 진행요원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아들이 표를 구해줘 남편과 함께 왔다는 윤정숙(53)씨는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심더"라고 반겼다. 대학생 박강우(27)씨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문화 공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을 위해서 좋은 일 아닌가요?"
1999년 9월 방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지방 나들이에 나선 '개그콘서트'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관심은 일찍 찾아온 여름 날씨만큼 뜨거웠다.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 방청권 신청에는 무려 3만 명이 몰렸고, 10대1의 경쟁률을 뚫은 3,000명의 방청객들은 녹화가 진행된 2시간 내내 쉴새 없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개콘' 팀도 부산의 정서와 소재를 흠뻑 살린 '맞춤형 팬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댄서 김' 김기수와 '갤러리 정' 정형돈이 여장을 한 채 렉시의 'girls' 가사를 '가시내야 가시내야∼'로 바꿔 부르며 막이 오른 '개그콘서트'의 '부산 버전'은 '개그대국' 코너에서 절정에 달했다.
허둥 9단(허동환)이 "내가 온다니까 우리 어머니가 회하고 이것저것 맛있는 거 다 해온데…"라고 말하면 "아 부산의 명소 해운대. 과연 부산의 어떤 것이 더 나올지 기대됩니다"고 해설을 곁들이는 식. 뮤직드라마 코너도 자갈치 시장에서 미역을 파는 아주머니를 소재로 한 '부산 갈매기' 편으로 꾸몄다.
이날 공연에서는 부산 토박이인 허동환(30)과 '생활 사투리'로 인기를 얻은 김시덕(23)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녹화 현장에는 KBS 공채 9기로 '개그대국'을 통해 10년간의 무명 시절을 벗어난 허동환의 부친 허식(63)씨가 자리해 의미를 더했다. "내 아를 낳아도" "니 쥐 잡아 먹었나" 등 유행어를 통해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전형을 코믹하게 보여준 김시덕은 울산 태생이지만 방청객들로부터 제일 큰 환호를 받아 부산이 자신의 '텃밭' 임을 증명했다.
이날 공연은 30일 밤 8시50분부터 70분간 방송된다.
강영원 책임 프로듀서(CP)는 "똑같이 수신료를 내지만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소외되어 있던 지역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면서 "'개그콘서트' 말고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가요무대' 등 프로그램을 전국 50개 지역을 돌면서 공개 방송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순회 특집의 수시 편성과 방송은 정연주 사장의 취임 이후 KBS가 내건 '시청자가 주인입니다'라는 의제를 구체화 하려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러나 지방 공연의 경우 서울보다 3∼4배 정도 비용이 많이 드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다. 실제 '개그콘서트'의 1회 제작비가 평균 3,000만∼4,000만원인데 부산 공개 방송의 경우 1억2,000만원이 들었다. 강 CP도 "올 한해 지역 순회 특집 방송을 위해서 50억원 정도가 필요한데 현재까지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KBS가 몇 번의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고 지역 시청자들에 대한 '작은 배려'를 이어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부산=김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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