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차익을 노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가는 글로벌 헤지펀드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헤지펀드의 '침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 당국을 통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이지만, 1990년대 이후 글로벌 헤지펀드는 지속적으로 세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최근 세계 금융 시장 혼란에 대해서도 헤지펀드의 급격한 자금 이동에 화살을 돌리는 시각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헤지펀드 자산 1,000조원 이상
27일 밴(VAN) 헤지펀드 자문에 따르면 1990년 2,000개 안팎에 불과했던 글로벌 헤지펀드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며 지난해 말 현재 8,100개 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미국 내 헤지펀드는 4,800여개, 미국 이외의 지역에는 3,200여개가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밴 헤지펀드자문 추산에 따르면 이들이 운용하고 있는 자산 총액은 8,200억 달러 가량. 우리 돈으로 무려 1,000조원에 달하는 액수다. 1990년 200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10여년 만에 40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최근 얼터너티브펀드서비스리뷰(AFSR)는 헤지펀드의 자산 합계가 지난해 중반 조사 당시 7,450억달러에서 1조1,600억달러로 늘어나 처음으로 1조 달러대를 넘어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헤지펀드의 열기는 갈수록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연기금이나 투자은행 등 대형 기관투자자가 주 투자 대상이었던 헤지펀드는 최근 개인들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관련 투자설명회도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소규모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헤지펀드의 펀드(Fund of fund)'가 성행하면서 개인의 참여가 크게 늘어났다.
헤지펀드에 농락당하는 시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세계 금융 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졌던 것은 핫머니의 갑작스러운 시장 이탈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국제 핫머니의 본체인 헤지펀드를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저금리와 달러 약세를 이용해 고수익 투자를 해온 헤지펀드들이 유가 급등과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설 등으로 투자 환경이 달라지자 한꺼번에 자금을 회수하면서 세계 증시를 대혼란으로 몰아 넣었다는 분석이다.
저금리로 달러를 빌려 고금리의 비(非)달러 자산을 운용하는 소위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자금은 금리 인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금리 인상에 대비하기 위해 신흥 시장에서 손을 털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던 것. FT는 헤지펀드들이 지난 1년간 낮은 금리로 달러화를 빌려 고수익이 예상되는 신흥 증시와 원자재 시장에 집중 투자해오다 이달 초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발표된 직후 1주일 가량 사이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104억 달러를 빼내갔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헤지펀드 규제 움직임도 빨라지는 추세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헤지펀드 등록 의무화 조치를 통해 최소한의 감시·감독을 받게 할 방침을 공론화하고 있고, 영국 금융감독원(FSA)은 은행들의 헤지펀드에 대한 무분별한 대출과 사후관리 부실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시장의 약점을 파고들 뿐이므로 시장의 급변은 시장 자체의 책임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헤지펀드'의 저자 대니얼 스트래치맨은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헤지펀드의 책임이라기보다 시장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했고,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은 "헤지펀드가 정통 뮤추얼펀드 등과 다르게 최근 신흥 시장 등에서 특별히 빠르고 공격적으로 자금을 회수해 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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