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7개월에 걸친 양궁 국가대표 선발의 대장정을 끝내는 26일 태릉선수촌 양궁장. 남녀 각각 3명만 살아 남는 '서바이벌 게임'이 마지막까지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10분 휴식시간에 저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이 비장하다.헌데 유독 눈에 띄는 두 선수가 있다. 큰 키(182㎝)에 화살주머니를 덜렁거리며 대기실 책상에 걸터앉아 바나나를 까먹고 잡담 하는 임동현(18·충북체고)과 "언니! (결과가) 어땠어요?" 하며 노란 '우비소년' 인형을 매달고 선배들을 조르르 따라다니는 이성진(19·전북도청). 둘 다 10대다.
1984년 정식종목이 된 이래 올림픽 여자 양궁개인전은 노다지의 주인공이 새파란 무명 10대 궁사로 뒤바뀌는 '인생역전의 무대'였다. 서향순(84LA)과 김수녕(88서울)이 그랬고 2000년 시드니에서 윤미진이 그랬다. 특히 윤미진은 당시 올림픽에 첫 출전해 88서울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신궁' 김수녕(동)을 밀어내고 2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3위가 국제대회 성적의 전부인 이성진의 아테네호 합류가 심상치 않은 것도 그 때문. 이성진은 아테네행 티켓 3장 중 마지막 한 장을 악착스럽게 거머쥐었다. 2차 평가전까지 4위에 그쳤지만 이날 기대를 모았던 '주부궁사' 정창숙(31)을 극적으로 따돌리고 아테네호에 승선했다.
이성진은 초등학교 4년 때 "체격조건이 좋다"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육상을 접고 양궁을 시작했다. 하지만 양궁명문 홍성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중고연맹전 개인전 2위가 고작이었다.
이성진의 활에 날개를 단 건 지난해 말 실업팀 전북도청에 입단, 서오석 현 국가대표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서 감독은 "슈팅감각과 힘은 좋지만 손가락을 끌어 쏘는 실수를 가끔 해 화살을 줄이고 활도 바꿔줬더니 제 실력이 나오더라"고 했다.
"꿈같아 실감이 안 난다"는 이성진은 자기 때문에 떨어진 정창숙에게 미안하고 팀에 해가 될까 불안하다. "제가 꼭 창숙이 언니 몫까지 해서 열심히 할게요. 같이 가는 언니들한테도 도움이 되야 하는데…"
하지만 지난해 뉴욕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결승까지 갔던 '낭랑 18세' 임동현은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겠지만 개인전에서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겠다"며 목표를 숨기지 않았다.
세계 최강이지만 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놓친 한국 남자 양궁에서 그나마 두개의 개인전 은메달(88서울, 92바르셀로나)을 목에 건 것은 10대 궁사들인 터라 임동현의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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