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커버스토리-식탁의 감탄사를 찾아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커버스토리-식탁의 감탄사를 찾아서

입력
2004.05.28 00:00
0 0

■맛집 찾기 10대 수칙조금 있으면 식사 시간입니다. 어디를 가실까요? 맛있는 집, 아니면 멋 있는 집? 그냥 가까운 곳에서 드시겠다고요? 글쎄 이왕 먹는 것, 맛 있으면 더 좋겠죠. 요즘 ‘웰빙’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건강에도 좋다면 금상첨화일테고….

그런데 맛있는 집이 어디 있는지 모르시겠다고요? 맛을 봐도 뭐가 뭔지 아리송하기만 하시다고요? 그렇다고 아무 곳에나 들러 그냥 배만 채우기엔 뭔가 아쉽죠. 맛깔스런 음식을 접하는 행복, 식사 후 ‘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경험을 해보고 싶으시다고요? 여기 내노라하는 전문 식도락가와 미식가들이 자신들만의 노하우 10가지를 공개합니다.

●간판을 유심히, 꼼꼼이 본다.

맛있는 집이라고 간판이 다 근사하지는 않다. 하지만 간판을 통해 그 집의 음식 수준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간판이 좀 있어(?) 보인다거나 오래된 간판 그대로라면 믿을만하다. 품격이나 전통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메뉴는 간단할수록 좋다.

메뉴가 많지 않은 집일수록 전문 식당들이 많다. 특정 분야에 강하다는 반증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메뉴가 많으면 음식에 전문성이 없고 맛도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허름한 집을 찾는다.

맛있는 집이 다 근사하지는 않다. 특히 사람의 왕래가 많고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 허름하게 보이는 식당 중에는 오래된 집이 많다. 꾸준한 맛을 유지해 오면서 단골 손님이 끊이지 않은 덕이다.

●화장실을 가 본다.

몇몇 유명 식도락가들은 음식점에 들어서면 화장실에 먼저 가 본다. 그 집의 위생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화장실이 깨끗하면 음식에 대한 위생과 정성도 깔끔하다고 보면 된다.

●원조에 집착하지 마라.

맛은 변한다. 처음 시도했다고 가장 맛있는 것은 아니다. 원조라고 크게 쓰인 간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통이다. 얼마나 변함없이 맛을 지켜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맛도 대물림이 맛있다.

식당을 자손이 물려 받아 하는 집은 일단 믿을 만 하다. 2대, 3대에 걸쳐 맛을 유지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정성과 노하우를 반증한다.

●사람이 북적대는 곳을 찾는다.

모르는 동네에서 식당을 찾는다면 사람이 많은 곳을 찾는 것이 요령이다. 맛있으니 사람이 몰리고, 또 사람이 많으니 식재료가 순환이 잘돼 신선한 맛이 유지된다.

●야채가 말랐는지(?)를 확인한다.

식당에 가면 많이 나오는 오이나 당근이 말라 있다면 손님이 많지 않은 식당일 확률이 높다. 손님이 적으니 미리 준비해 놓은 야채의 수분이 말랐다는 반증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아는 집도 맛이 조금씩 다르다. 하물며 모르는 집에 가면 실망하기 일쑤다. 실패하더라도 다음의 성공을 위해 여기저기 다니는 도전 자세가 중요하다.

●음식과 식당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과 같이 다닌다.

넘쳐나는 정보 중 그래도 믿을 만한 것은 아는 사람의 지식이다. 이들과 함께 가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그래서 식도락가 중에는 부모가 식도락가인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맛을 경험한 덕이 크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멋집 사냥꾼" 사진작가 이성곤씨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뉴와 맛을 중시하지만 사진작가 이성곤(40)씨는 맛보다 멋을 먼저 찾는다. 음식점의 인테리어나 분위기를 우선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멋집 사냥꾼'으로 불린다.

근사한 분위기를 갖춘 바와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전문잡지 '바 앤 다이닝'(Bar & Dining)의 사진 디렉터겸 대표로 일하는 그는 "직업이 사진 작가이다 보니 인테리어에 먼저 눈이 가지만 음식 맛을 도외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레스토랑을 비쥬얼컨셉으로 접근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코공예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그는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잡지사 사진디렉터를 거쳐 지난해 '바 앤 다이닝'을 창간했다.

전문 사진기자들과 함께 레스토랑을 찾아 다니며 취재하는 것이 그의 일과. 취재차 들르는 레스토랑이 한달 평균 50여 곳은 된다.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청담동 골목을 다닙니다. 멋있는 곳들을 찾아 다니는데 자동차 보다 자전거가 편리해요. 물론 운동도 되고요." 그래서 그의 신사동 사무실 입구에는 항상 자전거 두 대가 세워져 있다.

요즘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해외의 유명 레스토랑들이다. "해외유명 도시나 관광지에 감춰진 멋스런 레스토랑과 음식 문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저 외국 유적이나 명승지나 둘러 보고 현지 한식당에 갔다 오는 정도의 여행 패턴도 바뀌어야 돼요." 그래서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해외 출장에 나선다.

현지의 제대로 된 먹거리와 레스토랑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노하우다. 이 일은 클럽메드 출신의 맛 리서치 전문가 조원영씨가 도와 준다. 조씨는 "앞으로는 외국의 맛있고 멋있는 식당이나 레스토랑, 먹거리를 찾는 문화가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멋있는 식당은 맛도 있을 것 같다? 글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우선 누가 디자인 했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와인 리스트의 목록이 나라별, 빈티지별로 적절히 분포가 돼 있는지를 보며 음식 수준을 가늠합니다. 와인에 대한 조예가 있다면 음식에 대한 주관이 있을 확률이 높겠지요." 그가 제시하는 멋있고 맛있는 레스토랑 판별법이다. /글·사진 박원식기자

■게장집 낸 인터넷 음식고수 김용환씨

돈이 없어 값싸고 맛있는 집만 찾아 다녔다. 그러다 아는 정보를 인터넷에 올렸고 책으로도 펴냈다. 그리고 지금은 양념게장을 잘 만드는 남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디지털카메라 포털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의 음식갤러리 코너에서 필명 '나물'로 유명한 김용환(사진)씨. 인터넷에서 '음식 고수'로 이름을 날리던그는 지금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면서 양념게장 전문점 주인으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요리가 직업이지도 않았고 따로 공부한 적도 없어요. 집안이 워낙 가난한데다 백수(?) 생활도 오래 해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외식을 하더라도 값싼 데만 찾아 다녔어요."

30대 초반인 그는 지난 해 값싸게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정리한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란 책을 펴내 일약 유명세를 탔다. 경제 불황과 맞아 떨어져서인지 이 책은 요리책으로는 드물게 20만부 이상 팔려 나가는 진기록을 세웠다. "어릴 때부터 요리 사진을 보는 것이 왠지 즐거웠어요. 사진을 보며 이 요리는 무슨 카메라로 찍었고 어떻게 찍으면 더 맛있어 보일지를 고민하는 게 즐거움이었답니다."

그가 시작한 또 다른 사업은 양념게장 담그는 것. "제가 좋아하는 게장을 담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 게장 맛 한 번 보자'는 주문이 많았어요. 그래서 몇몇 사람에게 게장을 만들어 보내드렸는데 그게 지금은 직업이 되어 버렸지요." 홈페이지(www.namool.com)를 통해 주문하면 자신이 만든 게장을 직접 들고 배달까지 했던 그는 "'인터넷을 통해 글쓰던 그 '나물'이냐'며 반갑게 맞아줄 때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주문이 워낙 밀려들다 보니 답십리에 조그만 공장까지 마련한 그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양념게장을 직접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장사라기보다 맛좋은 양념게장을 선물한다고 생각해요. 규모가 커지면 맛과 정성이 부실해질 것 같아 사업을 키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그의 바람은 책에서 나올 인세로 조그만 식당을 내는 것. "값싸고 맛있는 식당이요? 같은 음식점이라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식당을 찾아 보세요. 그게 가장 확실한 비법입니다."

/글 박원식기자·사진 원유헌기자

■식도락문화 살펴보니… 입맛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먹는다는 것은 그냥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과 외식은 이제 문화이고 놀이입니다. 단순히 맛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와 분위기를 만끽하고 재미와 흥미를 즐기는 것입니다. 외식도 마찬가지죠." 푸드매거진 '쿠캔'의 서원예 기자는 "선진국으로 올라서고 경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음식 문화도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맛에 미친(?) 그녀는 지난 해 선배들과 일본으로 맛 여행을 떠났다. 3일 동안 하루 세 군데씩 레스토랑 12곳을 다니는데 쓴 돈 만 100여만원. 30만원짜리 '밤도깨비' 여행상품을 이용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지출이다.

"일본의 유명 식당과 레스토랑에 꼭 가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는지, 맛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었으니까요." 일행이 내린 결론은 앞으로 우리 음식 문화도 더 다변화된다는 것. "중국 황실의 찐빵만 팔거나 캘리포니아식 중식만 파는 식당 등 음식 문화가 굉장히 세분화돼 있어요." 그녀는 "일본에 이렇게 두텁고 완성도 높은 음식 문화 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굳이 일본까지 가지 않더라도 음식에 대한 경험은 중요하다. 외식 잡지 카사비스트로의 백승관 편집장은 "맛에 있어서도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여러 음식, 레스토랑을 두루 경험해 봐야 서로 비교하는 능력을 갖게 되고 자신만의 기준이 서게 된다는 것. 어릴 때부터 미식가셨던 부모님을 따라 이곳저곳 가본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그는 "음식에 대한 내력, 역사까지 알고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친구나 동료와 함께 다니면 더더욱 음식 맛이 살아난다"고 조언한다.

레스토랑 전문지인 베스트 레스토랑 편집장 출신인 서안씨도 "맛의 미묘한 차이는 먹다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익숙한 맛에만 길들여져 있어 새로운 것도 즐겨보려는 도전적인 자세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뉴욕에 레스토랑 연수 차 6개월간 머문 쿠캔의 이윤화 팀장은 "음식은 학습"이라고 조언한다. 해본 사람이 할 줄 아는 것처럼 많이 맛 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논리이다.

"뉴욕에 가서 놀랐어요. 페루의 가정식 요리 전문점에 가봤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다국적 음식이 발달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는데 낯선 페루, 그것도 가정식 전문이라니 음식이 얼마나 세분화 됐으면 그런 메뉴가 있었을까 놀라웠어요." 그래서 그 식당에만 3일 연속 갔다. 그녀는 "뉴욕에는 식당 이름이 지도상에서 한 지역을 대표하는기준이 될 정도로 음식 문화의 역사가 길다"며 "앞으로 우리 나라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음식 맛은 또한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주관적이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어서다. 바람직한 외식 문화에 관해 전문 식도락가들은 겸양과 절제를 강조한다. 하이텔에서 맛집멋집 사이트를 담당하는 이유경씨는 "음식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매개체"라며 "맘에 안든다고 인터넷에서 마구 혹평을 해놓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지적한다.

"손님은 왕이라지만 그건 왕처럼 대접받을 수 있는 손님을 의미하는 것이지, 모든 손님이 왕처럼 대접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원예씨는 "원하는 대접을 받는 것도 능력"이라며 "대접을 잘 받을 수 있는 매너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맛집 방송PD들의 취재 뒷이야기

"기본 반찬이 맛있는 집이면 주 메뉴도 맛있더군요. 반찬에 배인 손 맛이 식당의 척도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매주 토요일 아침 시청자들의 눈을 잡는 MBC TV '찾아라! 맛있는 TV'를 제작하는 정창권(캔디엔터테인먼트 제작총괄팀장) PD는 스스로를 '맛의 전령사'로 칭한다. 시청자들에게 주말마다 새로운 음식과 메뉴, 맛을 알린다는 의미에서다.

김영주, 김선영, 남미영, 박경향, 이민희씨 등 작가 5명, 프로그램 코너를 맡고 있는 담당 PD 등 제작진을 총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4년째 해 오고 있는 그는 이제 음식점 이름만 들어도 메뉴와 맛을 알아챈다.

"어떻게 맛있는 집들을 발굴하냐고요? 전문가 의견도 듣고, 시청자 제보도 받고, 인터넷이나 책자 검색 등 할만한 것은 다 하죠. 그래도 가장 믿을만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얘기인 것 같아요."

그의 프로그램이 한 주에 소개하는 식당은 평균 11곳. 2001년 11월 외식과 음식을 주제로 한 첫 프로그램으로 출범, 줄곧 맛 문화를 이끌어 오고 있다는 자부심도 크다.

"유명하거나 손님이 넘치는 식당 중에서 취재를 사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용 용량을 넘어서는 손님이 오면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죠. 이럴 땐 참 안타깝습니다." 프로그램 1회때부터 일해 온 김영주 작가의 얘기다. 어려움은 또 있다. "맛있는 집을 섭외하려고 연락하면 도둑놈(?) 취급 당할 때도 있어요. 대뜸 '돈은 얼마나 드냐' '광고료 내는 것 아니냐'는 등 험한 말을듣기 일쑤죠." 작가 김선영씨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보통 취재에 들어가기 전 맛집들을 발굴해 내고 미리 찾아가 확인해 보는 것은 작가들의 몫. 매운 맛으로 유명한 '홍초불닭'은 최근 이들이 소개한 맛집 중의 하나이다. 반면 소문만 듣고 찾아 갔다가 '아니다 싶어' 포기한 적도 있다.

작가 남미영씨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이건 무슨 재료로 만들었을까, 양념은 무엇을 넣었을까, 이 김치는 한달 묵힌 것 같다 등등 분석을 한다"며 "취재를하면서 의외로 맛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느낀다"고 얘기한다. 먹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끼니만 때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맛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서비스가 없으면 맛이 살지않습니다. 사람들의 기호와 수준이 급속도로 바뀌고 앞서나가는데 반해 식당이나 레스토랑들의 변화가 오히려 늦은 편입니다." /박원식기자

■식도락가들의 맛나는 방담

맛있는 음식과 식당의 기준은 뭘까. 소위 맛집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을 평가하며, 그 많은 맛집 정보들은 어떻게 수집했을까.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들을 만나 봤다. 천리안 식도락동호회의 필자로 명성을 날리고 현재 싸이월드의 식도락클럽 '먹클' 클럽장을 맡고 있는 송영민(37·한국정보처리학회 차장), 천리안 식도락동호회의 대표시솝 지준호(28·GM대우 기술연구소), 신림동에서 꼼장어 전문점인 자갈치꼼장어숯불구이를 운영하면서 여러 맛동호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고희정(39), 해외 식도락 문화에 익숙한 신세대 미식가 예진아(27·캐나다 유학중)씨. 지난 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부근의 자연식 한정식당 '달개비'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식도락의 즐거움을 함께 하며 맛집 사냥꾼의 평판을 얻기까지의 특출한 노하우를 얘기했다.

고희정 "최근 제주도로 여행가 진주식당에 들렀어요. 해물뚝배기를 먹었는데 너무 행복했답니다. 이 집은 언제 가도 다른 집과는 맛이 다른 것 같아요."

송영민 "전날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먹어서 더 맛이 살아난 덕도 있을 거에요. 된장과 오분작, 조개 등 해물 맛이 기가 막히지요."

두사람이 알게 된 것도 '맛'을 통해서다. PC통신 천리안 식도락동호회의 유명 맛집 필자로 이름을 날리던 송씨가 1998년 고씨가 운영하는 신림동의 자갈치꼼장어숯불구이를 몇번 찾은 것이 계기. 맛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여성 잡지에서 여름보양특식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과감히 소개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맛집이 유명해 지는 길

송영민 PC통신의 영향력은 지금 인터넷과 똑같습니다. 당시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등나무집을 소개했는데 지금은 분점도 늘어나고 엄청 커졌지요. 와인삼겹살을 선보이면서 유명해진 집인데 저 자신도 삼겹살을 워낙 좋아해 1주일에 5번 갔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지준호 네티즌들 사이에 뜬다고 그 식당이 뜨는 것 만은 아니에요. 등나무집은 주인 아저씨가 워낙 고객 관리를 잘 했고 할인 쿠폰도 발행하는 등 여러가지 신경을 많이 쓰는 게 눈에 보였어요. 그냥 성공하는 것이 아니죠.

송영민 맞는 말이에요. '옷을 걸을수 있는 캐비닛을 갖다 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바로 그 다음 캐비닛을 갖다놨더라고요. 그만큼 손님 입장에서 정성을 기울인다는 반증이지요. 여직원과 함께 갔는데 직접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줘 여직원이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답니다.

식도락의 이유, 먹는게 좋다

고희정 저는 맛있는 집들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요. 하지만 분위기만 치장해놓고 정작 음식 맛이 없는 곳은 증오해요.

예진아 저도 그래요. 저는 맛없는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면 꼭 2차를 가요. 맛이 있다고 느껴지는 걸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거든요.

송영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어려워 요즘 GPS(위성항법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죠. 그래서 어떤 맛집은 찾아오기 쉽도록 아예 GPS 좌표를 표시해주기도 합니다.

지준호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여자 친구와 손잡고 맛있는 집을 찾아 다녔어요. 제가 동호회에서 제일 어려 막내 대접을 받았는데 요즘은 식도락 연령층이 낮아진 것 같아요. 그 때는 제 또래를 찾아 보기가 어려웠지만 요즘 동호회에 나가 보면 대학생이 무척 많아요.

식도락은 고행길(?)

지준호 식도락은 고행길이에요. 음식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작업입니다. 맛집 한 곳의 사진만 10장 이상 찍어 올리고 평가 칼럼까지 띄워야 하니까요.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닌 만큼 좋아하고 재미있지 않으면 못합니다."

송영민 한 번은 리플을 받았는데 맛있는 식당 보다 그 식당을 소개하는 사람이 더 대단하다는 메시지였어요. 인터넷 맛칼럼니스트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니 고맙죠.

고희정 저는 한 식당에서 메뉴판을 촬영하다 즉결심판 법정에 선 적까지 있어요. 종업원이 '무슨 목적으로 촬영을 하느냐'고 다그치는 바람에 시비가 붙었죠. 식당 입장에선 메뉴를 카피해간다고 오해한 거죠.

식도락은 모험

고희정 저는 밥을 집에서 안 해 먹어요. 그래서 주말만 빼고 거의 매일 식당을 찾아 다니는데 맛있다고 검증된 곳만 갑니다. 돈내고 먹는데 실패하면 안되죠.

송영민 길을 가다 맛있어 보이는 곳이 있으면 PDA에 기록을 해 놔요. 나중에 시간이 날 때는 꼭 찾아가 봅니다. 70%는 기대에 못미치지만 30%는 성공하니까 30%의 만족을 위해 기꺼이 70%를 희생합니다."

지준호 저희들도 항상 가방에 디지털 카메라와 식당수첩을 넣고 다녀요. 요즘에는 검색하기 쉬운 PDA를 많이 쓰지요.

나누는 즐거움(?)

고희정 모은 정보를 회원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또 다른 기쁨입니다. 정보를 되도록 많이 얻어 남에게 주고 싶은 것이 식도락가들의 특성이에요. 식당에 갈 때도 항상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람으로 느낍니다.

송영민 맛있는 식당을 많이 알면 마냥 좋을 것 같죠? 정반대입니다. 어디를 갈 때 마다 더 고민하게 됩니다. 너무 많이 알아서죠. 동료들이 식당 선택권을 저한테 주는 것도 부담이 됩니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다 틀리니….

지준호 저는 친구들이 '지금 어디 있는데 어느 식당이 맛있냐'는 전화를 해 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전화가 자꾸 늘어나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좋은 식당의 조건

예진아 식당이 일단 유명해지면 변하는 경우가 있어요. 맛도 그렇고 서비스도 그렇고. 손님이 늘어나 정성을 기울이기가 어려운 탓일 법도 한데 일단 손님을 돈으로 보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준호 그래서 솔직히 말해 진짜 맛있고 좋은 집은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 유명해지면 본래의 맛과 정성이 없어질까봐 두려워서죠.

송영민 저도 비밀에 부쳐두고 있는 곳이 여럿 있어요. 절대 일반에 공개 안합니다.

고희정 유명해 진 후 달라진 집 중에는 주인이 바뀐 경우가 적지 않아요. 손님이 모이니까 큰 돈을 받고 식당을 파는 것이지요. 겉포장은 같아도 장인 정신이 바뀌면 맛도 달라집니다.

송영민 음식점은 첫째는 맛이고 다음은 서비스에요. 옛날에는 가격이 싸면 우선 좋았는데 지금은 가격보다 서비스가 우선이에요.

지준호 저는 맛 보다 서비스가 먼저에요. 돈 내는 만큼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죠.

예진아 저도 그래요. 송 선배와는 여기서 세대차가 나는가 봐요.(웃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