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을 비롯한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헌법재판소, 심지어 국가인권위까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놀랍게도 하급심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현행법상으로도 인정될 수 있다는 대담한 판결이 나왔다. 사법부의 법 해석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때로는 변해야만 하며, 소장 법관의 용기있는 판결이 그 단초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여부와는 별개로, 국가의 사법시스템과 관련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던져주었다.첫째, 법률을 합헌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법률을 합헌 또는 위헌으로 결정하는 것은 성질이 다른 행위다. 우리 헌법은 후자의 결정권한을 헌법재판소에 전속시키고 있다. 법원은 적용하여야 할 법률이 위헌이라는 의심이 있을 경우 재판을 정지하고 법률의 위헌 여부를 헌재에서 심판하도록 제청해야 한다. 헌재가 위헌제청된 사건의 결정을 장기간(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2년 넘게) 지연시키고 있다 하여, 법원이 스스로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단독판사가 법률조항의 위헌적 해석가능성을 특정하여 배척 의사로 판결하는 것은 헌법상 헌재에 부여된 위헌법률심사권을 찬탈하는 것으로 헌법의 사법기능배분질서를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여부 문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헌법적 법익갈등의 문제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를 인정할 것인지, 인정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병역의무와 등가관계에 있는 대체복무는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공동체의 진지하고도 신중한 토론 및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확정된 기준을 사실관계에 적용하여 법을 확인하고 선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사법이 아니라 국가가 처한 현실적 조건들을 고려하고 국민적 합의를 수렴해 법을 제정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입법의 몫이다. 이번 판결은 병역이행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이에 형평성을 확보할 조정적 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관이 월권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입법권을 침탈한 것이다.
셋째, 사법판단은 법관 개인의 주관적 신념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판결은 법관 개인이 가지는 권력의 산물이 아니라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사법권력을 위임받아 법원이 국민이 정한 내용과 형식, 절차에 따라 집행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판결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구속되어 행해지고 그 법률의 해석도 법관의 자의적인 견해가 아니라 헌법을 비롯한 현행 법질서 전체의 정신과 국가공동체의 가치합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법관이 개인의 소신에 따라 법령의 해석을 자의적으로 할 경우 법령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국민은 예측가능성을 상실할 것이요, 법치주의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특히 형사재판에 있어 법관이 헌법과 법률로써 정당화하지 않은 자신의 생각으로 재판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사례는 법관의 직업관, 사법본질에 대한 이해, 권력분립체계 및 법치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법조인 양성은 선발이 아니라 교육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번의 시험을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현행 제도로 말미암아 법학교육이 왜곡되고 법학교육기관이 수험학원화하는 한, 순간 순간 고독한 결단 앞에 서게 되는 법관들의 소양을 강화하는 법학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번 일이 사법개혁논의에서 사법부의 외관을 개조하는데만 주력하지 말고 더 본질적으로 사법부를 담당하고 운영하는 주체를 어떻게 길러내야 하는지에도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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