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들어 청와대는 줄곧 "청와대·행정부와 여당은 수평 관계로 가야 하고 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4·15 총선 이후의 실상은 '수평 관계론', '당 중심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때문에 청와대·행정부가 당 보다 우위에 서는 수직적 관계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총리급으로 예우 받았던 여당 대표가 장관 또는 부총리 급으로 격하된 것은 당·청 관계의 불균형을 반증한다. 군사정권,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때에는 여당 대표가 일주일에 한번 가량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만나 정치 현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수석 당원인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 대표의 주례 회동 요청을 수용하지 않는 대신에 당 의장에게 청와대 비서실장과 협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일 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 모임에서 "내가 과거처럼 총재가 아니기 때문에 주례보고를 받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다"며 '당정 분리'를 명분으로 주례회동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현실적으로 당 대표의 지위 격하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당 의장과 원내대표를 지낸 인사들이 장관급으로 입각하는 것도 달라진 여당 위상을 실감케 한다. 정동영 전 의장은 총선 직후에만 해도 총리 후보군에 거론되다가 어느 새 평장관인 통일부장관 입각으로 가닥이 잡혔다. 여권 일부 관계자들은 "우리당 소속인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총리로 진출하기 때문에 당 위상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고 반론을 펴지만 김 전지사의 경우 여당 대표성을 갖고 행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종종 우리당 지도부와 식사 모임 등을 갖고 전반적 당의 진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치 개입의 상징인 정무수석을 없애는 대신에 문희상 정치특보를 통해 여당과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 정책 및 국회 대책에서는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과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홍재형 정책위의장 등이 채널이 돼서 협의하도록 했다. 노 대통령 주도로 당·청간 채널이 선정됐다는 것은 청와대 우위 구조를 보여준다. 다만 우리당 의장은 과거 정권 때와 유사하게 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장관 등과 함께 고위 당정회의를 갖게 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정치 관여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당 위상이 너무 낮아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과반수 의석은 얻은 여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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