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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반대목소리에 귀를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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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반대목소리에 귀를 열어라

입력
200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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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탄핵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파탄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가 소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탄핵 사태는 또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해 주었다.민주주의는 그 어원상 인민이 다스리는 지배체제를 뜻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인민의 지배는 다수의 지배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소수의 처지다. 다수의 의사가 인민의 의사를 대표한다면 소수는 인민이 아니란 말인가.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다수는 결코 고정된 다수가 아니라 변화 가능한 다수여야 한다고. 즉 오늘의 다수의사가 내일은 소수의사가 되고 또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은 다수의견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수와 소수의 역전 가능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소수의 반대 권리가 다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억압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호될 때 그 가능성은 확보된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소수의 반대권리라는 것이다. 소수가 다수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현하고, 반대의견을 유포하고, 또 반대세력을 조직해 지지자를 확대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소수의 반대권리가 인정될 때 비로소 인민의 지배는 정당하게 다수의 지배로 환원될 수 있다.

소수의 반대권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다수의 의사가 반드시 옳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다수보다 그 사회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다스리는 체제가 더 정의롭다는 플라톤적 주장에 대한 민주주의의 변론 근거 역시 여기에 있다. 다수의 의사가 반드시 옳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소수의 반대권리를 적극 보호해 준다고.

어느 국가나 집단이 민주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기준이 소수의 반대권리 보장 여부이다. 이 척도를 적용할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과연 이 기준에 부합하는 민주국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국회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한 초다수 정치세력들이 소수 세력들에게 변론의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탄핵 소추를 강행한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탄핵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은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 시민들의 반대권리를 얼마나 인정해 주었는가. 탄핵을 지지하는 압도적 목소리가 혹시 소수의 침묵을 강요한 측면은 없었는가. 헌법재판소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렸을 때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의 명단은 왜 공개되지 않았고 또 그들의 의견은 왜 당당하게 개진되지 못했나.

민주화의 물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민주 이행 국면에 있는 많은 다민족국가에서 소수 인종들이 사생결단의 분리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수의 전제, 다수의 횡포이다. 체첸의 비극, 보스니아의 비극이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소수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힘으로 무장한 무자비한 전제정치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 사태 이후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정치란 어차피 갈등을 전제로 작동하는 것이고 또 갈등을 해소해 가는 행위이다. 갈등과 이견을 덮어버리거나 애써 외면한다고 상생의 정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상생은 자기와 다른 의견, 자기와 다른 이해를 가진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반대자의 존재와 반대권리의 인정, 의견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행동에 대한 관용이야말로 화합과 상생의 정치의 출발점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파탄과 회생의 경계지점에 와 있다. 정치사적 일대 전환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시민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야말로 '반대자에 대한 용인'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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