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을 등지고 솟아난 이 곳, 새로운 빛을 비춰라, 경복을 온 누리에 넓게….'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 교내 운동장에서 열린 경복고 동문 체육대회.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휘자의 손놀림에 맞춰 중년 신사들이 경복고 교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금빛 찬란한 각종 금관 악기들과 커다란 북, 그리고 20, 30대 못지않은 빠른 손놀림…. 이 연주단은 '경복고 OB 밴드부'(사진)다. 27년 전 해체된 학생 밴드부가 졸업생들에 의한 OB 밴드부로 거듭 태어나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비평준화 시절 서울 3대 명문의 하나로 꼽히던 경복고에는 1921년 개교 이래 밴드부가 오전 조회나 교내 각종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77년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학교 안팎의 여론에 밀려 해체됐다. 박동우 경복고 동문회 총무(54회)는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울시내 고등학교들이 앞 다퉈 밴드부를 해체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일설에는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가 "각하께서 경복고 밴드 소음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며 해체 압력을 넣은 것이 숨겨진 이유라는 소문도 있다. 청와대와 경복고는 멀지 않은 거리다.
경복고 OB밴드부가 탄생한 계기는 미국에 거주하던 동문 최병관(39회)씨가 지난 2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악기를 동문회에 기증하고 밴드부 결성에 나서면서부터다. 소식을 전해들은 장석웅 동창회장(아도무종합건축 회장·31회)이 밴드부로 활동했던 졸업생들을 소집해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다. 그래서 이번 동문 체육대회에서 첫 연주회를 하게 된 것.
OB 밴드부 회원 대부분은 30, 40년 전에 다루던 악기를 다시 공부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서로가 독려하며 헤쳐 나가고 있다. 박동우 총무는 "연습 장소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었지만 최근 모교에 기념관이 건립돼 도움이 된다"면서 "연간 6회 이상의 연주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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