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익(51·사진) 현대상선 사장에게선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뚝심 있는 선장의 모습이 느껴진다. 거친 풍랑을 만나 침몰 직전에 놓인 배의 키를 잡고 진두지휘하며 순항에 이르게 한 모습이 리더십과 보스기질을 갖춘 선장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상선호를 구출한 데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꿈을 실현시키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지구촌을 하나로 잇는 세계 초일류 종합해운물류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그의 야심이다.1976년 창립 이래 연간 42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현대가의 최우량 기업으로 평가 받았던 현대상선. 85년부터 99년까지 15년 동안 연속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생 심혈을 기울였던 대북사업에 깊이 관여하면서 이 회사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99년, 2000년 대북사업으로 2,000억원이상의 손실을 보고 2000년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가 몰리면서 결국 금융권의 자금 회수에 현대상선도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게 됐다. 대북송금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놓인 2002년 9월 노 사장이 전격적으로 '특급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이 상황 속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구조개선과 조직 슬림화 뿐이었다. 취임 한달 안에 3차례의 구조 조정을 단행, 전체 임원의 37%인 17명을 퇴임시켰고 직원 26명을 감원했다.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과감히 회사의 알짜사업인 자동차운반선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취임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했지만 2002년 한해 영업이익은 고사하고 34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주위에선 가장 안정적 수익 모델인 자동차운송사업부문 마저 매각했으니 무엇을 먹고 살겠느냐고 걱정을 하더군요." 이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지난해 3월 대북송금 파문에 휩싸여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 의견을 받아 현대상선 주식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돼 1만원 안팎이었던 주가는 1,000원대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대북송금 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우외환의 시련속에서 노 사장은 현대상선의 저력을 믿었다. 세계를 누비는 직원들의 애사심은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됐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괄목할만한 재무구조개선에다 하늘이 도운 덕인지 마침 중국 특수로 맞게 된 해운업의 호황은 현대상선이 제2의 도약을 위한 확고한 발판이 됐다.
2001년 말 6조4,500억원에 이르렀던 부채가 노 사장이 취임한 뒤 줄어들면서 올 1·4분기에는 3조5,900억원으로 3조원 가량 줄었다. 1,500%에 이르렀던 부채비율도 540%까지 낮아졌다. 2002년 1·4분기 1,212억원에 달했던 이자비용도 올 1·4분기에는 320억원까지 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상선의 올 1·4분기 실적은 매출이 1조1,9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258억원으로 1,146% 급증했다. 당기순익도 1,023억원을 기록해 전년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 현대상선의 경영목표는 매출 4조5,540억원, 영업이익 5,850억원. 영업이익으로 볼 때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이며, 이는 세계 최고 해운업체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대상선의 변신 뒤에는 노 사장의 '열린 경영'이 자리잡고 있다. 배가 항해중 풍랑을 만났을 때 선장부터 선원까지 모두 모여 대책을 짜낼 때 더욱 효과적이듯 노 사장은 회사의 어려움을 감추지 않았다. 취임 초기 구조조정 과정 속에서 매주 수요일 '호프데이'를 열어 임직원들과 호프 잔을 기울이며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 또 지난해 관리종목 지정으로 주가가 1,000원대로 떨어졌을 때는 관리종목 편입 사유와 회사 사정, 그리고 비전을 담은 편지를 모든 주주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주주들의 신뢰를 받으면서 2주만에 주가가 2배 이상 오른 것은 투명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 노정익은 어떤 사람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냉철한 CEO'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노정익 사장에게선 외모에서부터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박하고 소탈함이 묻어난다. 사실 그의 경영철학에서도 이 같은 성격이 드러난다. 이 때문에 늘 '직원 속으로', '현장 속으로'란 말이 따라 다닌다
직접 상선을 타고 2박 3일간 항해하며 현장의 선원들과 밤새 막걸리 잔을 나누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을 알아야 한다'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7시부터 회사에서 열리는 중국어 강좌도 직원들과 함께 들으며 어울리기도 한다. 그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현대건설에 입사,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경영전략팀장, 현대캐피탈 부사장 등을 거치면서 그룹내 최고 재무·회계·기획통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는다. 더욱이 그는 증권분석사, 공인회계사, 미국 공인선물중개사, 미국 공인회계사(CPA) 등 재무와 관련한 다수의 자격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실력파다. 현대캐피탈 부사장에서 2001년 물러난 뒤 1년의 공백기를 거치고 2002년 9월 현대상선 사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도 재무·회계통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상선을 구출해내라는 당시 정몽헌 회장의 뜻이 담겨 있었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공부하는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문화적 소양도 화젯거리다. 현대캐피탈 부사장에서 물러난 뒤 쉬면서 그는 단소와 동양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남녀평등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다. 취임 후인 2002년 11월 자율적인 근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26년만에 여직원 근무복을 없애고 완전 자율화하기도 했다. 노 사장의 부인은 최근 취임한 서명선(51) 여성개발원 원장이다.
/황양준기자
■노정익 사장 약력
1953년 충남 천안 출생
1976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7년 현대건설 입사
1979년 한국 과학기술원 공학석사
1979년 현대건설 공정관리부
1982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1988년 현대경영전략팀장
1989년 미 조지 워싱턴대 회계학 석사
2000년 현대캐피탈 부사장
2002년 현대상선 사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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