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5월27일 프랑스 언어학자 에밀 벤베니스트가 태어났다. 1976년 몰(沒). 벤베니스트는 20세기 인도유럽어 비교언어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인도유럽어의 명사 형성 기원'은 비교언어학만이 아니라 일반언어학의 기념비적 문헌으로 평가된다. 벤베니스트는 여기서 인도유럽어의 어근이 자음-모음-자음 세 요소로 이뤄진다고 보았다.스승 앙투안 메이예를 이어 파리고등연구원과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교편을 잡으며 벤베니스트는 18권의 저서와 600여 편의 논문·단평을 썼다. 그의 가장 흥미로운 논문들은 두 권의 '일반언어학의 문제들'로 묶였고, 이 책은 한국어를 포함해 대부분의 주요 언어로 번역됐다. 벤베니스트의 방대하고 치밀한 작업은 언어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인접 학문 연구자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인간의 언어가 벌들의 의사소통과는 달리 단순한 자극-반응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또렷이 밝혀냄으로써 행동주의 심리학에 치명타를 가한 사람이 벤베니스트라고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썼다. 문화이론가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벤베니스트의 대명사 이론이 역동적 주체성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고 평가했고,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중간태(능동태도 수동태도 아닌)에 대한 벤베니스트의 논문들이 현대의 작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세에 문법 교수 자격을 얻은 뒤 건조한 논문들에 파묻혀 평생을 보낸 벤베니스트가 젊은 시절 초현실주의 운동에 휩쓸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1925년 초현실주의자들의 기념비적 선언 '우선 혁명을, 그리고 늘 혁명을!'이 발표됐을 때, 벤베니스트는 루이 아라공,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같은 시인들과 함께 이 격렬한 문건에 공동 서명했다. 67세에 뇌졸중을 맞은 벤베니스트는 죽을 때까지 일곱 해 동안 병상을 지켰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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