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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6> 가요 '아빠의 청춘'의 아빠,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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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6> 가요 '아빠의 청춘'의 아빠, 1966년

입력
2004.05.27 00:00
0 0

이세상의 부모마음 다같은 마음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 영감인데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헤이)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세상구경 서울구경 참 좋다마는

돈 있어야 제일이지 없으면 산통

마음착한 며느리를 내몰라 보고

황소고집 피우다가 큰코다쳤네

나에게도 아직까지 꿈이야 있다 (헤이)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아빠의 청춘' 노래가사

아빠없는 시대에 태어난 소녀의 '아빠 이야기'

옛날 아빠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서기 4054년. 우리 가족은 엄마, 엄마, 오빠 그리고 나예요. 저는 엄마의 난자와 또 다른 엄마의 난자가 만나 태어났죠. 아빠 없는 생물체가 처음 태어난 건 2004년이래요. 암컷끼리 만든 생쥐였는데,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대요.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생물체를 생태계에 방출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제가 바로 그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물체인 셈이죠. 하하.

아마조네스라는 부족이 있었어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무사족인데 남자는 태어나면 모두 쫓아버리거나 죽였고, 자손번식을 위해서만 옆 나라의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요. 여자, 남자는 여전히 같이 살아요. 그런데 아빠는 없어요. 누구도 아빠가 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끼리 아기를 낳기 시작했죠. 아빠라는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 무겁고 힘겨워, 남자들이 스스로 아빠 되기를 포기한 게 한참 전의 일이예요. 괜찮아요. 저는 아빠 없이도 잘 살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빠가 없는 건 슬픈 일일까요?

1900년대 후반, 아빠들은 최고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빠노릇 못 해 먹겠다는 소리가 처음 나온 게 그 때랍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아빠의 자리는 오랫동안 비워져 있었어요, 아빠들은 언제나 바빴고, 집에 와서도 입을 꾹 다물었답니다. 1950년 이전의 아빠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났어요. 조국의 독립과 사상을 위해, 싸움터로 나가야 했죠. 집의 쌀독이 비더라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60∼70년대의 아버지는 산업역군이었어요.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어떤 아빠들은 중동의 그 더운 나라까지 갔어요. 가끔 집에서 보는 아버지는 낯설고 무섭고 아니면 늘 술에 취해 있었죠.

1966년 5월5일 어린이날에 나온 한국일보를 보니 아이들은 아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커, 기분 좋다' 하고 들어오실 땐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취해 있어요." "호랑이 아버지. 동생들이 떠들다가 아버지 구두소리만 나도, 조용해집니다."

아빠들이 가정으로 돌아 온 건 80년대 중, 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돈 잘 버는 건 기본이고 친절하고 싹싹하고 가정적이까지 한 '슈퍼(Super) 가장'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아내와 함께 시장보고 반상회 참석, 자녀교사 찾아 상담도." 1993년 7월19일 신문에 실린 당시의 모범 가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

90년대 초 "아빠 되기 정말 어렵구나" 깨달은 아빠들은 공부를 시작합니다. 좋은 아버지 모임, 딸사랑 아버지 모임, 아버지 학교, 아버지 교실…. 좋은 아빠 되기 10계명, 20계명, 30계명 마구 쏟아집니다. '이제는 좋은 아버지가 되자' '아버지 자리찾기' '아빠는 아이의 가장 좋은 친구다'…. 책도 참 많았죠. 하나같이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합니다. 아빠는 이제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모습은 '감부(甘父)'. 부드럽다 못해 느끼한, 치즈맛 내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갔죠. 그렇게 노력했지만 사람들은 '부권상실'이라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라고도 했습니다.

하긴 친절하기만 해서 좋은 아빠는 아닙니다. 90년대 말 IMF를 겪으면서 알아 버렸죠. 돈 없어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 아빠가 친절하면 뭐 합니까. 백만장자 아버지 아래 따르는 자식 많다더니, 돈 없으니 다 소용 없었죠. 아빠는 다시 '돈 버는 기계'가 됐습니다. 어떤 엄마는 달랑 자식만 데리고 유학길에 오르고, 기러기가 된 아빠는 뼈빠지게 돈 벌어 학비와 생활비 보내느라 허덕댑니다. 부자아빠 신드롬에 돈 없는 아빠, 부자가 되려 노력하지 않는 아빠는 '죄인' 이었습니다.

2004년 TV 광고를 볼까요. 넓은 아파트. 인기 배우 이병헌이 어린 딸과 침대 위에서 장난치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습니다. '하긴 저 정도 넓고 멋진 아파트 살 능력은 있어야 좋은 아빠지.' 대형 할인점 광고는 또 어떻고요. 엄마보다 먼저 퇴근한 아빠가 어린 딸과 함께 장을 봅니다. 돈도 많고, 집안일도 잘하고, 자녀들과도 잘 놀아줘야 합니다. 어느 하나 소홀하면 나쁜 아빠가 됩니다.

그 때 이미 일부 학자들은 "언젠가 아빠들이 사라질 것"을 예견했다고 합니다. 다들 코웃음 쳤죠.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말입니다. 그 때 귀 기울이고 아빠들의 짐을 조금씩 덜어줬더라면, 지금 저에게도 아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아빠, 아빠, 당신들은 정말 불쌍했군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오랫동안 우리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아빠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면 안 될까요? 그립습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66년 김승호주연 동명영화 주제곡 부권상실 요즘 시대 더 많이 불려

아빠라는 말에 담긴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반야월 작사, 손목인 작곡, 오기택이 노래한 '아빠의 청춘'은 1966년 나왔다. 촌부 역할을 가장 훌륭하게 해낸 배우 김승호가 아버지, 태현실 신성일 등이 아들 딸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었다.

주인공 박 영감의 머리 속에는 오직 자식 밖에 없다. 일찍 아내를 잃고 순두부집 평창옥을 꾸려가며 3남매를 키워냈다. 그런데 아들 역시 홀아비가 됐다. 아버지는 비밀리에 아들의 재혼 자리를 알아보지만, 자식들은 새어머니를 들이려는 줄 착각하고는 아버지를 차갑게 대한다.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 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 영감 마음을 자식들이 어찌 알까.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할' 뿐이었다.

이 노래는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반야월의 대표작은 '울고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이고, 손목인의 대표작은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이었다. '아빠의 청춘'은 오히려 1980, 90년대 부권상실, 흔들리는 아빠 등 사회현상과 맞물리며 더 많이 불려졌다. 최근에는 가수 비가 나오는 보험회사 CF광고에도 삽입됐다. 아빠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레코드 가게에서 어렵게 찾아낸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틀어놓고 아빠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짓는 비처럼, 오늘 우리의 아빠들에게 이 노래를 한번쯤 불러주면 어떨까.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최지향기자

■이 시대 아빠들에게 보내는 편지

솔직히 남자를 연구하고 관련된 운동을 전개하면서, 나는 모성애를 믿지 않게 됐다. 모성애는 절대적이거나 순도 100%의 의무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만약 그것이 지고지순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자기 속으로 난 아이들을 버리고 학대하는 어머니들이 있는 것인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성문제 전문가들은 말하길, "모성애는 다만 신화일 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 허구적인 모성애에 대한 대응으로써, 이제 부성애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남자는 아버지를 통하여 생성되었으며, 자신들 또한 대부분 아버지이거나 예비 아버지들이다. 산란준비에서 둥지를 혼자 만들고 죽어가면서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주는 '가시고기' 아버지의 사랑 얘기는, 소설과 영화 등으로 만들어져 한바탕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가시고기를 부성애가 가장 강한 생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아가 목욕을 자주 시키거나 자상한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성격도 원만하고 공부도 잘하며, 특히 학교운영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육형 아버지들 자녀의 경우, 사회진출 때 벌어들인 수입이 더 높다는 선진국 연구결과 등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여전히 부성애가 모성애의 그늘에 가리거나, 아버지들 스스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발휘함에 진가를 모르거나 주저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이제 엄청나게 변한 시대상황 만큼, 이같은 부성애의 발휘는 각자의 선택을 넘어선 의무 이전의 권리로서 그 빛나는 실화가 가능함을 명심하여야 한다. 부성애, 파이팅!

/정채기 딸사랑아버지모임 회장·강원관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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