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기 없는 '브레인 서바이버'(MBC), 이유진이 출연하지 않는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SBS), 금보라 없는 '솔로몬의 선택'(SBS). 생각만 해도 재미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MC 못지않은, 가끔은 MC보다 노련하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패널이다. '패널전성시대'다. 지금까지는 인기 MC의 출연여부가 오락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 패널이 출연하느냐, 나아가 어떤 조합으로 패널을 선택하느냐가 좌우한다. 대표적인 예가 SBS '야심만만…'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브레인 서바이버'. 강호동 신동엽 김제동 유재석 등이 진행하는 버라이어티쇼와 조형기 MC 몽 정준하 지상렬이 함께 나오는 두 오락프로그램중 어느 쪽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가 클까. 요즘은 오히려 후자가 아닐까.
●조형기·이유진·MC몽 등 인기
조형기의 예를 보자. 그는 직업이 '패널'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브레인 서바이버' '전파견문록' 등 고정 출연 프로그램도 여러 개. 많게는 서른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어린 출연자들 사이에서 그는 큰형님 노릇을 자처하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최근 방송된 '야심만만…' 중 특히 재미있었다고 꼽히는 58회(4월26일) 방송을 보자. 재미의 핵심은 조형기―지상렬의 조합에 있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주거니 받거니 투닥거리는 부분은 폭소가 터지는 뇌관이다. "오늘 제작진에 섭한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네. 이쪽을 너무 주저앉힌 거 아냐?"(조형기) "그러게 우리 만갑이 형님 마음에 얼마나 스크라치(scratch)가 생기겠어요."(지상렬)
MC몽은 패널로 활약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지명도가 높지 않은 힙합그룹 '피플크루'의 멤버로, 튀는 외모도 아니지만 입심 하나로 주목 받아 MBC 시트콤 '논스톱' 출연에 이어 최근에는 솔로 음반까지 발표했다. 아직까지도 MC몽을 가수보다 "아, 그 말 재미있게 하는 애?"라고 기억하는 이가 훨씬 많을 것이다.
슈퍼모델 출신 이유진도 '야심만만…' 출연을 통해 건강한 이미지를 굳혔다. 대부분의 여자 연예인이 예쁜 척, 얌전한 척 하기 바쁜 것과 달리 "스킨십할 때 오부지게 찐 속살을 만지면 곤란하다" 등 여자의 심리를 꼭꼭 집어내는 솔직함이 비결이다.
●달변·눌변 조합이 좋다
예능 프로그램 PD들은 "패널 의존도가 큰 프로그램은 섭외의 어려움 때문에 탄생한 틈새 공략형"이라고 말한다.
'서세원쇼', '이홍렬쇼' 등 한때 인기를 끌던 토크쇼는 톱스타를 내세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시청률을 올렸다. 그러나 이제 그럴 만한 톱스타도 많지 않고, 있다 해도 섭외가 어렵고, 결정적으로 톱스타가 출연한다고 무조건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A급은 아니지만 말을 재미있게 하는 이들을 모아 놓고, 이들이 마음껏 얘기하며 떠들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새로운 오락 프로그램 형식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브레인 서바이버'의 김유곤 PD는 "톱스타들은 너무 자기관리를 하다 보니 섭외가 어렵다. 게다가 퀴즈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출연을 고사한다. 그래서 중견 연예인들, 어쩌면 한 물 간 이들을 자꾸 불러 들인 것이 '낙엽줄' 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입담 좋은 패널을 골라 내는 것이 제작진의 과제다. 예능 PD들이 꼽는 최고의 패널은 무엇보다도 "말을 맛있게, 건조하지 않게 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자기 얘기 안하고 언제나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으로 준비된 멘트만 하는 톱스타는 사절. 자기의 경험을 들춰내 윤기있는 대사를 쏟아 내는 이들을 선호한다.
출연진의 조합도 중요하다. '야심만만…'의 최영인 PD는 "친한 사람끼리 나오면 제일 좋다. 모두 다 말을 잘 할 필요는 없다. 말 잘하는 사람 한 두명에, 어눌한 사람도 한명 낀 조합이 더 좋다. 여자가 한명 있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건 각각 다른 캐릭터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 MC가 해결사"는 옛날
스타 MC들이 대거 등장해 벌이는 버라이어티쇼는 오히려 식상해졌다.
지난 개편 때, 어마어마한 출연료로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이휘재를 총동원해 만든 SBS '일요일이 좋다'나, 별 재미없는 것으로 판명 난 심리게임 형식에 스타 MC만을 내세운 '이경규의 굿타임', 신동엽 김용만이라는 이름값에 시청률을 의존하고 있는 '신동엽 김용만의 즐겨찾기' 같은 프로그램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증거다.
"신동엽 같은 스타 MC를 세워만 놓아도 시청률 20%는 나오는 것 아니냐"는 식의 안이한 생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발랄하고 특이한 프로그램 형식과 재기 넘치는 패널, 그리고 MC가 이뤄내는 3박자이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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