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모래판을 석권했던 씨름계의 거목 김성률(경남대 교수) 장사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56세.김씨는 전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마산 삼성병원에 입원한 뒤 25일 심근경색으로 타계했다. 마산 성호초등학교 시절 씨름에 발을 들여놓은 김씨는 당시 영남씨름의 강자였던 고 모희규 선생의 지도를 받았다. 타고난 체격과 승부사 기질을 갖춘 그는 1963년 마산상고(현 용마고) 1년 때 한국일보 주최 전국씨름대회에 처음 출전, 쟁쟁한 선배들을 물리치고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경남대에 입학후인 1967년 전국 장사씨름대회에서 당시 씨름판을 호령하던 박두진, 강기영 장사를 물리치고 첫 성인대회 패권을 차지한데 이어 이듬해 거구 씨름꾼 박범조마저 꺾고 모래판 천하통일을 달성했다. 183m, 130㎏의 큰 체격에도 불구, 들배지기는 물론이고 발뒤축걸이 등 발기술과 다양한 손기술에 능해 기술씨름의 진수를 보여주며 5년간 한 번도 지지 않은 불패신화를 만들어냈다.
10년 가까이 모래판 정상을 지켰던 김씨는 1975년 당시 영신고 2학년이던 홍현욱(현 한국씨름연맹 경기실행본부장)에게 왕좌를 내줬다. 그러나 이후에도 씨름에 대한 애정은 놓지 않았다. 프로씨름 발기인 및 경기위원장 등을 맡아 1983년 민속씨름 출범에 산파역을 했고, 모교인 용마고 씨름 총감독, 경남대 교수 등으로 재직하며 이만기 이승삼 강호동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을 발굴, 후진 양성과 씨름 발전에 힘써 왔다. 유족은 아내 박유희(52)씨와 장남 종우(대학원생·26), 차남 종헌(대학생·22)씨. 빈소는 마산시 합성동 삼성병원 영안실 14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9시. (055)290―5654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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