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인사 제청을 거부한 고건 총리의 사표제출로 부총리가 총리를 대신하는 총리대행 체제로 내각이 운영되게 됐다. 법과 상식을 어겨 가며 무리한 편법인사를 강행하려다 맞게 된 대행체제다.정부조직법은 '국무총리가 사고로 인해 직무를 대행할 수 없을 때' 부총리의 직무대행을 규정하고 있지만 고 총리의 사표제출과 수리가 뜻하지 않은 '사고'라고 할 수나 있을지 어처구니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청와대의 서투른 국정운영이 빚은 자체사고라고 할 도리밖에 없다.
개각은 왜 하는 건지, 대상이 된 3개 부는 무슨 사유가 있는 건지 뒤죽박죽 속에 고작 결론이 총리대행체제라면 이 정권의 국정수행능력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개각 연기를 밝히면서 "예고하고 준비하는 게 상식"이라고 해명했지만 장관 3명을 바꾸려고 이런 파동을 낳는 것을 어찌 상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상식으로 말하면 애당초 기능과 직무를 무시한 권력안배형 개각의 발상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고, 물러나는 총리에게 요식형 인사제청을 강권했던 변칙적 사고가 더 중요한 실책이었다. 교체 대상부처와 후임장관 이름까지 명시된 마당에 정작 인사는 할 수 없는 이 지경은 마치 한편의 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 책임총리제니, 실질적 인사제청권이니 하는 말들은 당초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먼저 했던 말들이지만 스스로 한갓 수사로 전락시킨 셈이다.
지금 왜 국민이 총리대행체제를 겪어야 하는가. 대통령에게 헌법정신을 지키는 국정운영을 주문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불과 엊그제인데 아직도 법과 원칙을 훼손하는 발상이 나오는 게 걱정스럽다. 노 대통령과 여당은 총선승리가 안겨 준 권력의 도취에 빠진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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