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플러, 손질된 콧수염, 그리고 독일산 다비도프를 태우던 노옹을 만났다. 그는 저명한 미술평론가로 여든 살 너머쯤 잡수셨다. 미술전시회에서 그 분에게 내가 존경하는 화가의 그림을 어떻게 보시는가 물었다.노인다웠다. "강이 처음부터 강이냐! 강은 서서히 순리대로 살다가 어느 순간 이름을 얻었다. 저 친구 또한 언젠가는 강이 되겠지…"잘 들어보면 아직은 강이 아니라는 얘기다. 잘 들어보면 위대한 격찬이다. 그는 강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꼭지점 A와 B를 연결하면 직선이 된다. A와 B가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 거기서 운동이 발생한다. A가 자극을 하고 B는 반응한다. B의 반응은 다시 자극이 되고 A가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그런데 계속 이딴 짓을 속없이 하다 보면 왕복달리기를 할 때처럼 짱구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직선이었던 것이 서서히 타원으로 변한다.
그런 다음에는? 물론 원이 돼 간다. 나중에는 아주 똥그래진다. 그래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한 원운동이 시작된다. 이쯤에서 맴돌던 원이 서서히 제 분을 못 참고 방향을 튼다. 사실은 트는 것이 아니라, 틀어지는 것이다. 이제 원은 '구'가 되어간다. 이 '구'는 완벽한 존재로서 아주 딴딴하고 강력한 것이다. 직선에서 평면 그리고 다시 입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데생과 똑 닮았다. 강이든, 구든 좋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부단한 운동이다. 운동하지 않는 것은 정체된 것이고 멈춘 것이다. 연극도 멈추거나 고이면 연극이 아니다.
/고선웅 극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