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만들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난데없다는 느낌부터 준다. 구상 자체가 새로워서가 아니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우고도 숱한 문제가 지적돼 유보한 사안을 새삼 단호하게 추진하려는 것이 갑작스러운 것이다. 문제점을 되짚기에 앞서 대통령의 의도부터 헤아리게 될 만큼 석연치 않다.우선 거론된 특별수사기구가 일반공직 아닌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게 그거 같지만, 검찰과 별도로 새 기구를 만드는 타당성과 직결된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별도수사기구 요구가 거셌던 것은 검찰이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등의 권력형 비리와 관련해 권력의 간섭에 휘둘리거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책무를 저버린 지난 과오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권력에 야속할 정도로 엄정하게 권력주변 비리를 파헤쳤다는 평가다. 이런 마당에 권력형 비리 수사권을 굳이 검찰에서 회수, 검증되지 않은 새 조직에 맡기려는 당위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층 독립된 기구에 부패척결을 맡기려는 의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인 부패방지위 산하기구가 준사법기관인 검찰보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란 보장은 없다. 특검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전문성 부족 등을 고려하면, 실효 없는 옥상옥 우려가 큰 것은 당연하다. 검찰이 기소권을 갖더라도, 정부 전체의 권력형 비리 대응력이 후퇴할 소지마저 있다.
이렇게 볼 때 검찰업무와 겹치는 것을 무릅쓰고 수사권을 지닌 비리조사처를 만든다면, 권력형 비리보다는 국민 민원과 직결된 일반공직 비리와 사정기관 내부비리 조사를 맡기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고, 부패방지위의 성격과도 어울린다. 이런 여러가지 지적을 무시할 경우, 검찰권 약화와 통제가 목적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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