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국무총리의 이별은 담담하게 이뤄졌다. 사표는 25일 아침 즉시 수리됐다. 곧 이어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 총리는 "저는 물러갑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노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기립박수로 고 총리의 15개월 노고를 치하했다.국무회의 초반에 잠시 들른 고 총리는 "17대 총선을 관리한 뒤 새 국회가 구성되기 직전에 첫번째 총리로서 임기와 역할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며 "이런 뜻을 대통령이 가납해줘 짐을 벗게 됐다"고 짤막한 퇴임사를 했다. 국무위원이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고 총리는 노 대통령, 총리대행이 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차례로 악수를 한 뒤 퇴장했다.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노 대통령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서로 존중하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오전7시부터 약 1시간 동안 고 총리와 조찬을 함께 했다.
국무회의가 시작되기 전 강금실 법무장관은 고 총리에게 "저에게 허락도 안 받고 그만둡니까"라고 농담을 건넸다. 고 총리도 웃으며 "법적 절차를 밟아 야 하나요"라고 응수했다.
고 총리는 이날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점심도 총리실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총리로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 열린 이임식에서 고 총리는 2사단 방문 등 한미동맹강화,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해결, 총리가 국회를 직접 상대하게 된 것 등을 자신의 성과로 꼽았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도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위기상황을 혼란 없이 극복해 냈다"고 자평했다.
고 총리는 이임식 후 기자실에 들려 "내가 제청권 행사를 고사하기 위해 배수진으로 사표낸 듯 비춰지는데 정반대"라며 "원래 5월 마지막주에 사표를 낼 생각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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