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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여덟번째 시집 낸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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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여덟번째 시집 낸 정호승

입력
200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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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지난 5년간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시인은 5년 전 시집을 내고는 단 한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그동안 출판사 경영을 맡았다가 문을 닫았다. "내가 출판인이 아니라, 시인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사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반성의 세월이었다"고 정호승(54) 시인은 말했다. 돌아갈 곳은 시밖에 없었다. 50여 편의 시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여덟번째 시집 '그 짧은 시간 동안'(창비 발행)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아무도 모른다/ 장례식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가/ 아침마다 꽃을 주워먹고 산다는 것을/ 발인이 끝난 뒤/ 텅 빈 영안실 바닥에 버려진 꽃들을 먹고/ 환하게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장례식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에서). '오늘도 부지런히 세 분의 시신을 돌보아드렸습니다/ 부서진 뼈를 맞추고 상처를 꿰매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수의를 입혀/ 고요히 화장장으로 옮겨드렸습니다'('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에서).

새 시집에서 정호승의 눈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진다. 시각장애인과 노숙자들, 걸인, 시장의 지게꾼, 장례식장의 미화원, 화장장 장례지도사 …. 우리사회에서 화려한 시선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의 따뜻한 눈길은 1980년대 그늘진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애정을 전했던 초기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그 때가 좋았다"고 돌아본다. 치열하게 시를 썼던 때가 좋았다는 의미다.

지금은 그때처럼 날선 세상은 아니지만, 세상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여전하다. 그래서 어떤 시편은 정호승씨의 초기작과 닮아 있다.'밤의 서울 하늘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십자가마다 노숙자 한 사람씩 못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다'('밤의 십자가'에서)나 '제발 함박눈이라도 내려/ 고이고이 저 시체를 덮어주었으면 좋겠다'('버려진 골목'에서) 의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그렇다.

"무엇을 얻거나 이루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내 인생을 위로해줄 때가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시인은 말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위로 받고, 사람들은 그가 쓴 시를 읽으면서 위로 받는다. 시인의 그런 순결한 마음이 눈물로 국화빵을 굽는 사내에 대한 아름답고 뛰어난 노래에 담겼다.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국화빵을 굽는 사내')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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