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를 괴롭히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그것은 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기각 후 상생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후임 총리에 한나라당이 펄쩍 뛰고 있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라는 카드에 집착하느냐는 의문이다. 이 문제가 미스터리로 보이는 이유는 한나라당의 반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김 전 지사가 그리 개혁적이지도 않고 얼마 전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말을 갈아탄 철새정치인이자 최근 경남 유권자들에게 "여당을 당선시키면 노 대통령이 큰 선물을 줄 것"이라고 지역주의를 선동한 당사자로 중립적인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 심지어 노 대통령에 우호적인 언론과 평론가들조차도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그에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20일 대통령직 복귀 후 처음 가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이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유추할 수 있는 결정적인 힌트를 줬다. 노 대통령은 이날 우리당 지도부에게 당의 지지기반이 취약한 지역, 즉 영남 "지역의 인재를 중히 쓰고 전면에 내세워 우리당이 전국적인 면모를 갖추게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당연히 우리가 추측할 수 있듯이, 노 대통령이 영남, 특히 경남 공략을 위해 김 전 지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것이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남 공략을 위해 영남 인사의 중용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진영에서 영남 출신의 총리감이 김 전 지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해서 뭐하지만 경남만 하더라도, 예를 들어 남해군수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하에서 행자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씨, 부산 지역 주요 대학 총장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태일씨 등 개혁성에서 김 전 지사보다 훨씬 앞선 인물들이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이들은 김 전 지사처럼 한나라당에 있다가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승리하자 뒤늦게 당을 옮긴 철새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일 것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한나라당에서 빼오면서 이적료로 총리직을 약속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설마 노 대통령이 그 정도로 타락하고 현실에 오염됐겠는가. 따라서 마지막 가능성이 남는다. 그것은 노 대통령이 깊은 생각 없이 여러 카드 중 하나로 김혁규 카드를 내세웠는데 사방에서 반대를 하자 예의 오기가 발동해 김혁규 카드를 고수하고 있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 사방에서 문제가 있다고 반대하니 특유의 고집과 승부사 기질이 생겨나 "그래 반대할 테면 반대해 보라"고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경우이다. 여러 면에서 이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설사 이 시나리오대로 노 대통령이 오기 때문에 김혁규 카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사태는 별로 다르지 않다. 원래 김 전 지사에 집착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사방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이에 귀를 기울이고 바로잡아야 정상인데 노 대통령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탄핵에도 불구하고 별로 바뀐 것 같지 않다. 참으로 걱정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김혁규 카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략을 잘못 세웠는지 모른다. 즉 반대하면 오기로라도 더 하고 마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참작해서 김혁규 카드를 막기 위해서는 "김 전 지사는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김 전 지사야 말로 총리감"이라고 칭찬을 하고 나섰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노 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 "압도적 우세는 때론 방심이나 실수를 하게 하는 요소"이니 "조심해서 주의 깊게 해 나가자"고 재차 당부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이처럼 정답을 정확히 알고 있는 노 대통령이 김혁규 카드야말로 노 대통령이 우려했듯이 압도적 우세로 조심해서 주의 깊게 해 나가지 않고 실수를 하고 있는 바로 그 같은 경우라는 점을 왜 모르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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