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俳句)는 5·7·5 음절로 된 일본의 단가(短歌)다. 2차 위기가 발생했던 재작년쯤,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의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가 북핵문제의 3가지 해법을 일본 전국시대의 하이쿠 이야기로 풀어낸 적이 있다. '대망(大望)' 등 일본 대하소설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얘기다.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유년시절 두견새를 보고는 "울지않으면/ 죽여버려야겠다/ 호토토기스(두견새)"라고 읊었다.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田秀吉)는 "울지 않으면/울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울지 않으면/ 울 때를 기다리리/ 호토토기스"라는 하이쿠를 남겼다고 한다. 픽션인 야사(野史)지만, 애기의 묘미는 일본의 통일이 완성되기 까지 세 사람의 각각 다른 성격과 정책이 모두 필요했다는 데 있다.
오래 전 읽은 일본 신문이 생각난 것은 평양을 다녀온 일본 총리의 모습을 보고서다. 또 지금 우리 정부가 앞에 놓인 여러 정책옵션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김정일 정권을 말살하겠다는 정책을 취해온 것은 미 정부 내 네오콘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불어도 외투를 벗기지 못하는 강풍(强風)처럼 이 정책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도쿠가와 같은 인내력으로 핵문제를 대했다. 햇볕정책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효용성도 입증된다. 과거에 우리는 북한에 대한 지렛대가 없었다. 북한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했던 1995년과 96년, 정부는 민간단체의 구호활동을 창구 단일화란 이름으로 방해했다. 지금에 와서는 웃기는 일이지만, 얼마 안 되는 정책수단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제 남측의 대북 영향력은 미국이 남북경협을 견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임동원 전 수석은 최근 대북송금사건 관련 공판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커다란 틀의 대북공작의 일환"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설명대로 북한의 남측에 대한 의존도는 생명줄이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우리에게 낡은 옷이 됐다. 무겁고 잘 맞지도 않는다. DJ정부 당시 남북 회담에 임했던 한 관계자는 "도저히 대통령의 지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세세한 지시를 받았다. 회담에서 추가하거나 뺄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직성에 덧붙여 햇볕정책의 치명적 결함은 불투명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대북지원을 하면서 분식과 눈속임을 되풀이했다.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야당은 물론, 국민이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2기의 대북정책을 새 틀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북한과의 공존이라는 전제조건을 그대로 두되, 추진방식에선 대담한 전환이 필요하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포기하도록 만드는 합리적인 신(新) 햇볕정책이다.
대선을 맞은 미국, 수교협상을 앞둔 일본의 대북정책이 모두 전환점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야당의 대북노선이 바뀌고 조사 결과 국민여론도 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과의 갈등을 빚거나, 국론을 분열시키는 대신 화합을 가져올 대북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통일부 장관직을 놓고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승우 정치부 부장대우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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