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자리한 영화사 씨네월드 사무실. 이준익 감독에게 한 편의 시나리오가 넘어왔다. 그런데 제목이 심상치 않다. '왕의 남자들'. 원작자의 이름도 영화판에선 낯설다. 김태웅, 바로 3년 전 조선시대 궁중 코미디언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이(爾)'로 각종 상을 휩쓸었던 극작가다.이준익 감독은 "사극 소재를 찾다가 저자거리의 천민인 광대와,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같은 눈높이로 만난다는 내용의 파격적인 작품을 만났다. 보자 마자 계약했다"고 말했다. '날 보러 와요'(김광림 작)를 원작으로 삼은 '살인의 추억'이 남긴 성공의 추억이 너무 강렬한 탓일까. 충무로가 연극과 소설, 만화 등 인근 장르를 적극적으로 영화판에 끌어들이고 있다.
김광림, 이만희, 이상우 등 중견 극작가가 충무로에서 맹활약 중이며, 고선웅 등 신진 극작가들도 최근 이 흐름에 가세했다. 김광림씨는 청년필름의 신작 '굿 로맨스'를 집필 중이고 이상우씨는 명필름의 '노근리 다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이 영화화하는 것을 필두로 하일지의 '진술', 김영하의 '거울에 관한 명상',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 등이 영화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한국영화가 다양해지고 소재 또한 폭이 넓어지다 보니 연극, 만화, 소설 등 매체 영역 구분 없이 서로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다. 영화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떠올라 이제 다른 매체와 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나가고 있다"고 짚었다. "예전엔 검증된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등 원래 매체의 매력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영화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게 다르다"는 분석이다.
탄탄한 구성과 드라마를 앞세우며 활약하는 중견 희곡 작가들의 행보도 돋보인다. '와일드 카드' '아홉살 인생'을 쓰고 각색한 이만희 등이 대표적이다. 이송희일 감독의 단편 '굿 로맨스'를 장편 영화로 만들고 있는 청년필름의 심현우 실장은 "드라마성이 강하고 남녀의 격정적 사랑이 나오는 영화라서 연륜 있는 작가 김광림씨에게 의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원작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준익 감독은 "'라이어'의 실패에서 보듯 영화적 문법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을 경우 실패할 수 있다"고 조심스런 전망을 던졌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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