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칸 시내에서 10여㎞ 떨어진 호텔 '칸 비치 레지던스'. 23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57회 칸영화제 취재를 위해 기자가 묵었던 숙소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기자회견 기사를 노트북으로 송고한 18일 새벽, 인터넷으로 다른 신문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박찬욱,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만난다'는 제하의 기사 때문이었다.아침 일찍 칸 필름마켓에 나와 있던 한국영화 관계자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망신만 당했다. "어떻게 심사위원장이 경쟁부문에 오른 감독을 만난답니까.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장은 물론 다른 심사위원 8명도 일절 출품작 관계자를 만날 수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한국 신문만 보면 칸영화제가 온통 한국영화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니까"라는 말도 들었다.
100% 맞는 말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이 '올드보이'의 3분의 1이 안 됐는데도 한 신문은 '여자는…'의 여주인공 성현아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현아가 '포토 콜' 행사에서 사진기자들로부터 여러 포즈를 요청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단연 '칸이 사랑하는 감독' 홍상수였다. 게다가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의 절반 이상은 한국 기자들이었다.
일부 신문은 '올드보이'와 '여자는…'에 대한 현지 평가도 좋은 것들만 취사선택했다. 물론 두 작품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연일 커다란 주목을 받았지만, 관심과 평가는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올드보이'는 영화전문지 스크린으로부터 상위권 평가를 받았으나 르 몽드, 프레미어의 별(★) 평가에서는 '최악'(Pas du Tout·전혀 없다)이었다. 프레미어와 쥐브랑에서 좋은 평가(별 4개 만점에 3개)를 받은 '여자는…'도 누보 시네마와 스튜디오로부터는 최저점수를 받았다.
자국 영화에 대한 한국 기자의 애정은 당연하다. 기자도 한국 영화 시사회를 보면서 제작자처럼 떨리는 심정으로 외국 기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애정은 애정이고, 보도는 보도다. '여자는…'의 기자회견은 썰렁했고, 한국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칸 전선, 이상 없다'는 식의 애정은 한국영화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회성 열정이자, 소아병적 자아도취다.
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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