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뛰어난 여성운동가 둘이 동시에 여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현경과 앨리스의 神(신)나는 연애'(마음산책 발행)에서다. 미국에서 오랜 친분을 나눠 온 신학 교수 현경(48)씨와 소설가 앨리스 워커(60). 함께 25일 한국을 찾아 한달 동안 머물면서 평화음악회, 평화기행, 독자와의 만남을 가지기에 앞서 출판사로부터'여성들의 영혼을 치유해 줄' 열 두 가지 질문에 받았다.'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서 '지구를 살리는 여성의 힘은 무엇인가'까지, 그리고 그 질문에 둘은 시로, 산문으로 대답했다.
우머니스트 앨리스
'나는 여신을 보면/ 알아챌 수 있는 게 정말 기뻐…이걸 보기 위해/ 필요한 건/ 가슴의 지혜 뿐'(앨리스 워커, '여신'에서) 여덟 살 때 오빠가 쏜 장난감 총에 맞아 한쪽 시력을 잃어버린 워커는 독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흑인 민권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백인 민권 법률가 멜빈 로젠맨 레벤탈과 결혼했다. 딸을 낳고 두 권의 소설을 발표한 뒤, 이혼한 그녀는 1982년 낸 장편 '컬러 퍼플'로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여성의 한계를 고민하고, 그들의 합당한 지위를 얻기 위한 분투는 자신이 만들어낸 용어'우머니스트'에 담겨 있다. 페미니스트란 말이 유색인종 여성을 소외시켰다는 지적에서 나온 '우머니스트'는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를 의미하며,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담하고 용기 있는 여성'을 뜻하기도 한다.
살림이스트 현경
'나에겐 꿈이 있지/ 살고 싶어 미치는/ 남녀노소 다 모아/ 살림을 차리는 거야…호박꽃은 호박꽃으로 활짝 피어 아름답고/장미꽃은 장미꽃으로 활짝 피어 아름다운 곳'(현경, '가이아의 집'에서)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중일 때 그녀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사상 처음 아시아 출신 여성으로 주제 강연을 맡았다. 성령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은 세계 각국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보수적인 학계와 교단에 실망해 학교를 그만둔 그녀에게 유니온신학대가 교수직을 제안해 진보신학의 명문인 그곳의 첫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가 됐다.
워커처럼 그녀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한국여성의 가정일인 '살림'에서 나온 '살림이스트'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끌어안고 살려내, 평화와 건강과 풍요로움을 창조해내는 여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둘의 대답
페미니즘을 남성운동에 대한 저항이 아닌, 전체 사회운동의 큰 틀에서 바라보도록 하는 두 사람은 많은 여성들이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명료하게 답한다.
결혼과 독신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워커는 "진정한 관계는 나와 '창조' 사이의 무엇이지, 나와 한 남자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라고, 현경은 '자신의 세계를 이해 못하는 파트너와 삶을 나누는 것은 혼자 살며 자기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 남자'에 알레르기를 느끼는 여자들에게 현경은 "우리가 오직 같은 문화권 남자만을 위해 창조된 존재라고 가정하는 건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양성애자인 워커는 자신의 체험을 살려 "우리의 상상력을 남자에게만 한정시킨다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여성의 독립은 어떻게 이뤄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워커는 "경제력과 발언력은 어느 정도 비례한다"면서 백악관 앞에서 이라크전쟁 반대시위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행복을 이야기했다. 현경도 "내가 히말라야의 오지, 산 마을에 혼자 살 때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나를 지켜주는 남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다치거나 아프면 헬리콥터를 불러올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지구를 살리는 여성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현경은 이렇게 답한다."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느끼기, 우리자신이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자임을 자각하기, 최선을 다한 후엔 모든 것을 내려놓기." 표현은 다르지만 앨리스 워커도 한 마음이다. "다른 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도록 북돋우기, 지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행운을 확신하면서 나아가기."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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