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결정을 계기로 한미동맹의 신뢰관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일동맹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공고해져 가는 느낌이다. 군사대국 미국과 경제대국 일본을 부부관계에 비유한다면, 이들은 1951년 인연(동맹조약 체결)을 맺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서로의 신뢰를 의심하기도 하고 다툼도 벌였지만 별거(동맹와해)나 이혼(동맹파기)과 같은 중대한 고비한번 없을 만큼 돈독한 군사관계를 유지해 왔다.
양국간 동맹은 각자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전략적 이해를 서로가 담보해주는 완벽한 교환관계에 기초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신을 패전시킨 미국을 장래의 후견인으로 새로이 인식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우산과 경제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현대국가의 재건을 꾀했다. 국가의 안보는 대미군사관계에 의지하고 자체 방위력에 대한 투자는 국민총생산(GNP)의 1퍼센트 내외 수준에 묶어두며 국가의 역량은 경제발전에 집중한다는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은 동맹체결 협상 과정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성장을 지지한 것은 서유럽을 부강하게 하여 구소련에 대한 든든한 대항세력을 키우고자 했던 목표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일본은 무임승차만 하는 외교가 없는 국가라는 비아냥을 사는 대신, 값싸고 확실한 안보우산을 확보하는 한편 '평화국가' 이미지를 쌓는데 주력해 왔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공통위협을 마주하는 냉전기간 동안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을 안보의 후견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미일동맹이 동북아 지역 전반의 안정질서를 유지하는데 주 기능을 담당했다면 한미동맹은 북한의 도발이라는 구체적인 위협을 억지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논리상으로는 소련위협이 사라졌으니 미일동맹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해야 하고, 북한은 아직도 건재하니 한미동맹은 오히려 강화돼야 할지도 모르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1990년대 초 이후 일본은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동맹정책의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모색하기 위한 담론을 미국에 앞서 이끌어 나갔다. 소련위협 이후에도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을 미리 간파한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유지 방침을 기정사실화하고 마땅한 명분과 그에 걸맞은 역할을 새롭게 창출해 내는데 있어 대단히 신속한 모습을 보였다.
그 첫 결과가 1996년 미일간의 신안보공동선언이며, 이는 이듬해에 신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라는 문건으로 공식 발표됐다. 기존의 미일동맹이 일본 본토의 안전확보에만 국한돼 있었다면 1997년부터는 본토뿐 아니라 아태지역 전체의 안보사안에 대해 작동하도록 그 지리적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러한 미일간 지침은 일본은 군대를 갖지 못하며 외국에 대항해 싸울 수 없다는 일본의 헌법규정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대신 일본이 영토 밖에 나가 미국과 작전을 할 때는 미국군의 전투행위를 후방에서 40가지 영역에 걸쳐 지원할 수 있다는 구체적 내용이 이 지침에 명기됐다.
이렇듯 미국과 정부차원에서 약속한 동맹의 강화방침을 자국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필요한 국내법들을 제정하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99년엔 주변사태법, 물품용역에 관한 상호지원법, 자위대법을 구비하여 일본이 일본주변의 안보사태를 어떻게 규정하고 필요시 미국을 어떻게 지원하며 자위대를 어떻게 동원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하였다. 9·11이 발생하자 테러조치특별법을 신속하게 만들었고,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을 맞이한 이후로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물론 국제사회의 안보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한층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유사(有事)관련 법안들을 정비해 가고 있다.
한국이 일본처럼 거침없이 대미군사관계를 조정하지 못하는, 혹은 않고 있는 이유는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탈냉전의 신세계에 아직도 적응치 못하고 있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 잔존하는 북한 군사력의 위험성은 한미동맹의 기존역할을 확인해주지만, 북한위협의 시대 이후 양국이 지향할 새로운 군사관계의 목표와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툭 터놓고 얘기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나라 안팎으로 도전요인이 끊이질 않았다. 북한은 핵 모험을 멈추지 않고 있고 한국사회와 정치는 이제야 미국을 주체적으로 보기 시작할 만큼 냉전 50년의 긴장과 위압감이 그만큼 컸었다. 6자회담의 대화장치는 어렵사리 유지되고 있지만 정작 북한도 새로운 국제사회에 동참하고자 마음먹고 있는지는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다.
새로운 한미관계의 밑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가운데 주한미군의 재조정과 동맹의 변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대미관계의 평등성은 일관되면서도 현명한 전략에 의해 하나씩, 그리고 차츰차츰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의 힘이 계속 커지니 미국도 일본의 입장을 보다 경청하게 되었다. 저간의 사정상 동맹의 재정립이 늦어지긴 했으나 한국에게 있어선 지금도, 통일이 된 이후에도 미국과의 동맹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이혼할 수 없다면 보다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지내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부부관계요 군사관계다.
협찬:SK 주식회사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37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행정학 석사,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저서 'Future Security Relations among the U.S., Korea, and Japan: Balancing Values and Interests' (CSIS출판사 2004년) 등
■고이즈미, 美 전폭 지지 "美·日관계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었다"
"미일관계가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었다." 하워드 베이커 주일 미 대사가 최근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발발 이후 일본이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의 특급 동맹국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두가지 큰 도박을 했다. 지난해 3월 미국이 유엔결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자 그는 즉각 미국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2월에는 자위대를 이라크에 신속하게 파병했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확실한 지지 표명은 '동맹중심주의'와 '유엔중심주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종래의 외교전통을 깨뜨린 것이었다. 자위대 파병도 평화헌법 하의 일본에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난제였다. 큰 선물을 받은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를 '진정한' 친구로, 일본을 믿을 수 있는 동맹국으로 추켜세우게 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에 위기가 닥칠 경우 일본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유엔이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에 미일동맹의 강화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의 주류 세력들은 대체적으로 이 같은 고이즈미의 도박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성공적이며, 이변이 없는 한 일본의 장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논지는 고이즈미 총리가 너무 유엔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헌신짝처럼 내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굴종적인' 미국추종 외교는 단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황이 변하면 일본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라크 파병 자위대의 안전과 일본 국내에서의 테러 발생 여부 등 향후 일본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는 많다. 당장 오는 11월 거행되는 미국 대선에서 정권이라도 교체된다면 일본정부는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총리의 도박은 완결형이 아니라 아직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