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부터 일본 동남 방향으로 해류가 흐른다. 해류를 이용하는 것은 항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해류가 시속 1노트만 되도 그걸 타면 하루에 24마일(38.6여㎞)을 저절로 가게 된다. 반대로 거스르면 24마일을 손해보기 때문에 해류를 따름과 거스름에 따라 매일 48마일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우리는 해류를 따라 비교적 빨리 일본쪽으로 올 수 있었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부산에서 하와이까지 작은 철선을 타고 혼자 횡단한 김현곤씨는 바람과 해류를 거슬러야 했기 때문에 항해 거리도 우리의 2배 이상이었고 기간도 훨씬 오래 걸렸다고 한다.
일본의 동남쪽 바다는 해류가 일정하지 않다. 또 괌이나 필리핀 부근에서 형성된 태풍이 자주 통과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로와 기상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미국에 사는 감윤근씨와 클리브씨, 기상청 태풍 담당 신도식 연구관, 정종석 한국해양대 교수, 부산 수영만 요트봉사회의 전우홍씨 등이 매일 전자메일로 각종 정보를 보내 주었다.
특히 기상청에서는 매일 2, 3회 메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일본 동남쪽에 이르렀을 때 올해 1호 태풍인 '수달'이 발생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 소식에 우리는 당황했다. 우리가 북위 26도를 지나고 있는데 바로 그 남쪽 북위 10도 부근에서 태풍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태풍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이냐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각기 다른 충고를 해 주었다. 어떤 분은 치치시마 섬으로 피하라고 하고 다른 분은 하치죠시마 섬으로 피하라고 했다. 또 다른 분은 가능한 빨리 배를 움직여 북서쪽을 향하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엔 치치시마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이 바로 태풍이 지나가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북서쪽으로 계속 도망쳤다. 태풍의 진로가 달라질 때마다 선원들은 안도하기도 하고, 더욱 불안에 떨기도 했다. 한때는 우리의 항로로 태풍이 통과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원들은 무거운 침묵에 잠기면서 기도를 했다.
우리는 태풍을 피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할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태풍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의연하게 죽음을 맞아야 한다고 서로서로 타이르고 다짐했다.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말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가족을 더 보살피지 못하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 '물고기들에게 몸을 보시할 것이니 시체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 '내생(來生)에는 가족과 주변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보살도를 닦겠다'는 것 등이다.
홍영숙씨는 "우리는 살아서 돌아갈 것이니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라며 다른 이가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하려 했다. 김옥희씨는 "그래도 생사해탈의 원을 세우는 사람답게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해야 돼"라고 말했다.
4월 15일 새벽 4시께 큰 바람과 파도가 밀어닥쳤다. 태풍이 멀리 통과하지만 그 영향이 우리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하지만 전에 더 강한 바람과 더 높은 파도를 많이 겪어온 우리에게 태풍 수달의 간접 영향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강한 바람 덕분에 배를 더욱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큐슈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공포에 떨었던 과거를 돌아보고 서로 "살아있음"을 축하했다. 그리고 뒤에서 우리를 이끌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다.
협찬:(주)영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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