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양국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를 통해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와 행동반경을 가늠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했다. 주한미군이 담당했던 10개 특정임무(selected missions)를 한국군에게 이양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특정임무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한국군 단독경비와 북한의 포병을 무력하기 위한 대화력전수행본부 운용, 해상침투 적 특수부대 저지 등 핵심임무와 후방지역 화생방제독, 기상예보, 공지(空地)사격장 관리 등 부수임무가 망라됐다.
한국의 한반도 안보책임을 강화한다는 자주국방의 그림자에 묻혀 당시 그 의미가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특정임무 이양은 미군의 행동반경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심상찮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주한미군의 '한반도 안보 족쇄'를 푼다는 뜻이다.
결국 단순 주둔보다는 유사시 신속이동 능력을 갖춤으로써 주한미군도 다른 해외 주둔 미군처럼 분쟁지역에 파견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었던 셈이다.
붙박이로 한반도 붙잡혀 있던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로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는 물론 한미동맹의 근간 변화에 가속이 붙게 됐다.
미국은 당초 한미간 협상을 통해 용산기지 이전과 2사단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 일정을 우선 협의한 후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본격 추진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몇 달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이라크 상황이 다급해지면서 주한미군을 이라크로 차출하기로 결정했고, 자연스럽게 주한미군 성격변화 논의도 예상보다 빨리 구체화 하고 있다.
우선 한미양국이 합의한 2사단의 후방 재배치 계획의 전반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2사단 재배치에 대한 한미간 합의사항은 문산-파주 축선 등에 분산 주둔해 있는 2사단 병력을 의정부(2사단 사령부인 캠프 레드클라우드)와 동두천(캠프 케이시) 지역으로 선통합(1단계)한 이후 안보상황을 감안해 한미정상 차원의 합의를 거쳐 2사단을 오산·평택으로 후방배치(2단계)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사단의 2단계 재배치 계획의 골격은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예하 핵심 보병여단인 2여단의 이라크 차출이라는 돌발변수로 합의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산·평택은 기존 미군기지 시설 활용이 가능하고 전시지휘소(수도권 지역)로부터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또 공군기지에다 항만(평택항)까지 갖추고 있어 신속기동군으로 재편될 주한미군의 유사시 신속한 해외이동을 뒷받침 하게 된다.
보다 중요한 점은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는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한미양국은 지난해 5월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을 한미동맹의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포괄동맹은 전통적 군사동맹을 넘어서 해상로 확보, 대테러, 국제범죄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동시에 책임범위를 동북아, 더 나아가 전세계로 넓히는 적극적 안보 개념이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는 것은 한미쌍무군사동맹이 포괄동맹으로 확대 발전해 나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 GPR 개념과 추진 상황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GPR;Global Posture Review)계획은 부시 행정부 들어 본격적인 검토가 시작됐다. 2001년 4년 주기의 국방보고서(QDR;Quadrennial Defense Review)는 냉전 이후 대량살상무기나 테러, 핵 등 새로이 등장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대응태세를 변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방보고서는 그 해 9월초 발간 예정이었지만 9·11사태가 터지면서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2년 동안의 후속 작업 끝에 지난해11월 부시 대통령은 GPR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GPR의 골자는 미군을 신속기동군 형태로 전환하고 세계적으로 재배치를 추진한다는 것. 기존의 기지도 기능에 따라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배치하면서 유사시 분쟁지역에 투사하는 중추기지 대규모병력이 장기주둔하는 주요작전기지 소규모 기지인 전진작전거점 연락요원만 주둔하는 안보협력대상지역 등 4가지로 분류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떤 기지가 어떤 유형에 포함되는지 확정되지 않았다. 주일미군이 중추기지에 포함되고 주한미군을 주요작전기지로 운용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은 검토단계라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GPR의 세부사항은 향후 의회 및 우방들과 협의한다"는 미국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해 미국과의 협의를 앞두고 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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