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늘 타자(他者)인지 모르겠다. 서로에게 타자이기에 외롭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타자이기에 오해하고 다가서지 못한다. 타자에 대한 오해는 세대가 세대를, 집단이 집단을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즈음 한동안 정치적 격랑을 지나온 우리이기에 타자에 대한 경원이 집단화하는 현상은 더욱 마음 아프다.이를테면 네티즌이 그렇다. 타자로 묘사되는 네티즌이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 결사의 본능이 강한 대단히 '극성스러운' 집단으로 이해되는 듯하다. 이런 이해의 저간에는 방송, 문화, 정치, 스포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막강한 여론 형성 능력을 보여온 네티즌들의 의사표현 방식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낯설다는 것은 나와 타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역동적인 네티즌의 자기 표현은 타자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움이었을 게다. 게다가 네티즌의 주력이 젊은 세대라는 사실은 세대 갈등의 외피 안에 네티즌을 가둬버리는 오류를 일반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네티즌은 억센 타자가 되었다.
'파페포포 메모리즈'(심승현, 홍익출판사)는 감성의 주체로서 네티즌을 이해하게 하는 만화이다. 웹툰, 혹은 에세이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이며 2003년 전체 도서를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만화다. 애초엔 작가가 개인 카페에 자신의 첫사랑을 추억하며 일기처럼 한편 두편 업데이트 했던 것이었는데, 이 작품에 공감한 네티즌들이 온라인 공간 여기저기에 퍼서 나르며 주목을 받았다.
'파페포포 메모리즈'가 네티즌과 교감했던 코드는 첫사랑과 추억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이었다. 깊은 밤 홀로 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의 바다를 서핑하는 네티즌들은, 결집된 의사표현을 하는 집단이기 이전에 워낙은 외롭고 사람이 그리운 존재들이었을 게다. 외롭고, 사람이 그리워서 작은 공감대만 형성돼도 그들은 깊게 유대를 나눌 줄 알았던 것이다.
네티즌들은 '파페포포 메모리즈'에 담겨있는 첫사랑의 추억들을 통해 모니터 앞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의 향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진 터였다. 사회적 이슈보다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작가 자신이 네티즌이었기 때문에 '파페포포 메모리즈'는 자연스럽게 네티즌이 그리워하는 이야기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네티즌은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발견했고 '파페포포 메모리즈'는 네티즌을 설명해주었다.
타자에 대한 이해는 감성을 공유하는 일로부터 가능하다. 그리하여 자아와 자아로 만나게 될 때 타자는 우리가 된다. '파페포포 메모리즈'의 감성으로 네티즌이라는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좋은 증거가 된다.
박군/만화칼럼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