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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애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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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애라 선생

입력
2004.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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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0만원권 발행을 신중하게 검토하기 시작하자, 여성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10만원권 모델이 여성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단체는 집회를 열어 신사임당을 모델로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먼타임스가 최근 여성 국회의원에게 조사한 결과, 유관순이 으뜸(40.7%)으로 꼽혔다. 신사임당의 두 배에 가까운 지지였다. 까닭은 그가 '역사상 어떤 남성 위인에도 뒤지지 않는 용기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남성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여성의원들은 혹독한 옥중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은 '한국의 잔 다르크'에게서 강한 자부심과 굳센 역할모델을 보는 것 같다.■ 박차정도 강인한 여성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1925년 동래일신여고학생 때부터 항일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다. 21세 때 서울 근우회 간부가 되었고, 일경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견뎌냈다. 후에 인육시장으로 팔려가는 여인 틈에 끼어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아끼는 이들의 도움으로 베이징 화베이(華北)대학을 졸업했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결혼했고 무장독립전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여자의용군을 모집하여 대장이 된 그는 곤륜산 전투에서 일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34세로 장렬하게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마쳤다.

■ 여성 항일운동 단체도 마땅히 기억되어야 한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에 대항하는 제주 해녀의 권익옹호 운동이 항일투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1932년 1월 세화장날,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 장터에 1,000여명의 해녀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수탈기구로 변질된 해녀조합의 횡포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또 청년 항일운동가를 검거해간 주재소를 습격하며 과감한 구출투쟁을 벌였다. 제주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이 운동의 주동자였던 김옥련 부춘화는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제주 여성의 강인함을 실천한 그들에게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 오는 28일 경기 수원의 천천고교에서 이애라 선생의 공훈을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다. 월간 '순국' 등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애라를 기리는 강연회다. 주제는 '고문과 탄압으로는 내 민족투혼을 꺾을 수 없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그는 독립운동가와 결혼하면서 치열한 투쟁의 길을 걸었다. 남편이 활동하는 시베리아로 밀행하다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순국했다. 지금 여성계는 여성의원이 지난 국회의 16명에서 39명으로 늘어나 크게 고무돼 있다. 기쁜 일이다. 그 기쁨의 뿌리는 선구적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걸었던 고난과 영광의 길에 닿아 있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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