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은 이젠 '러브 스토리'와 같은 멜로적 비극의 소재가 아닙니다. 소아 백혈병 환자가 한해 1,200명이나 되지만 75%는 완치됩니다. 성인의 암에 비하면 놀라운 완치율이죠. 소아암은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할 싸움이긴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구홍회(48) 교수는 소아만 놓고 보았을 때 국내에서 조혈모세포 이식(골수이식·제대혈이식)을 가장 많이(지난해 69건) 한다. 최근 집계 결과 구 교수팀은 1997년 이래 315례의 소아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실시, 7년만에 300례 돌파기록을 세웠다. 조혈모세포 이식술의 모태랄 수 있는 가톨릭의료원이 19년만에 300례를 넘겼으니 얼마나 급속한 발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생기는 암은 위암 간암 폐암 같은 소위 5대암이 아니다. 가장 많은 것이 3분의1을 차지하는 백혈병으로 3∼5세에 주로 발병한다. 3세 이전엔 배에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져 병원을 찾게 되는 신경모세포종, 10세가 넘으면 골종양과 생식세포종양이 많다.
이 때쯤 부모는 30∼40대여서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가 없고, 환자 외에 다른 아이도 돌봐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소아암은 흡연이나 만성간염 등 생활습관보다 염색체 이상이 주 원인이라 부모는 "아이에게 몹쓸 병을 물려줬다"는 말 못할 중압감에 시달린다. 자연히 부모는 마음이 약해지고, 치료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소아암 치료에서 어려운 건 부모를 설득하는 겁니다. 애들은 항암치료가 힘들어도 오히려 금방 잊어먹고 잘 놀죠. 부모에겐 '자책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
소아암 치료는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구 교수의 치료 실적을 질적으로 따져보자. 치료가 가장 어렵다는 신경모세포종의 경우 연속적인 고용량 항암요법과 조혈모세포 이식을 도입, 생존율을 76.4%로 끌어올렸다. 신경모세포종은 돌이 지나면 대부분 4기라 수술이 어렵다. 이 때 항암제를 일반 용량의 10배쯤 투여하고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것을 두번 반복함으로써 치료효과를 높인 것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조직형이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을 경우 치료효과가 50%가 안 되는데 구 교수는 조직형이 절반밖에 안 맞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초용량 조혈모세포를 뽑고 순수하게 정제해 이식하는 방법으로 5명 중 4명(80%)이 생존하는 결과를 얻었다.
제대혈 이식은 조직적합성 항원이 6개 중 1,2개 틀려도 생존율에 큰 차이가 없어 최근 이식이 활발하다. 제대혈은 양이 적어 어린 환자에게만 쓸 수 있는데, 두 사람의 제대혈을 동시 이식하는 것도 시도하고 하고 있다.
구 교수는 "소아암 치료는 환자마다 개별화하고 복잡해지고 있다"며 "진료팀의 성기웅 유건희 교수와 활발히 토론하는 분위기가 치료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실제 비슷한 또래의 환자라도 항암제 용량이 10㎎부터 3,000㎎까지 차이가 난다. 이처럼 복잡 다양한 치료과정에서 투약의 실수를 없애고 부작용을 감시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 소아병동엔 전담 약사와 전문 간호사를 두고 있다.
"소아암 치료는 환자를 건강한 성인으로 사회에 복귀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환자에겐 학습이나 또래와의 교류 등에 공백이 없도록 하는 의료 외적인 뒷받침도 필요하죠. 국가적으로 공공 제대혈 은행을 지원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 기부문화가 더욱 활성화하면 좋겠습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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