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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性매매 피해 국가배상 신청 스물 세 살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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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性매매 피해 국가배상 신청 스물 세 살의 절규

입력
2004.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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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피해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며칠 뒤 그를 만났다. 청구인 열 넷 중 한 명인 그(신원을 밝힐 수 없으므로 '그'이다)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 셋. 별 일이 없었으면 풍선 같은 꿈을 안고 이제 막 사회에 막 첫발을 디뎠을 나이다.그는 나이보다도 훨씬 앳돼 보였다. 간혹 짓는 미소는 어린아이처럼 맑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듣는 건 고통이었다. 질문도 조심스러웠다. 대부분이 여성으로서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내용들이었으므로. 그래도 그는 담담하게 지난 세월을 털어 놓았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럽고도 참혹한 심정으로 그의 얘기를 옮긴다.

그 일이 일어난 건 3년 전 고향 강원도에서 대학을 다니던 가을이었다. 아빠가 병으로 일손을 놓으면서 살림이 기울었다. 답답한 마음에 들른 점집의 여주인이 은근히 권유했다. "다방에서 일하면 돈을 꽤 번다는데…." 순진한 그는 당장 집안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는 2녀의 맏이다) 그날 밤 다방주인을 소개 받았다. "그냥 배달만 하면 된다"며 선뜻 내놓는 첫 달치 봉급선불 200만원에 마음 한 구석 의구심을 지웠다. 집에는 "학과 적성이 안 맞아 당분간 직장에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다음날로 다방이 있는 이웃 소도시로 떠났다. 그게 지옥의 입구였다. 200만원은 그가 만져본 처음이자 마지막 돈이 됐다.

다방 아가씨들이 빚 얘기를 했다. '여기서 먹고 자고 월급 받고…. 왜 빚을 진다는 거지?' 그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올비(費)' '시간비' 따위의 말도 안 되는 계산법 때문이었다. (티켓을 끊고 차 배달을 나가면 한시간에 2만원을 받아와 다방주인에게 내야 한다. 이게 시간비다. 손님의 요청으로 놀러 가든지 해서 하루를 비웠을 때 내야 하는 돈이 올비다. 20∼25만원쯤 된다. 남자들이 이걸 꼬박꼬박 챙겨줄 리도 없거니와, 몸이 아파 쉬었어도 올비를 못 낸 것으로 처리된다. 게다가 이런 빚을 핑계로 급여를 거의 못 받으니 먹고 입고 바르고 하는 모든 생활비용이 빚이 된다.)

결국 몸을 팔았다. 아니, 팔 수밖에 없었다. 실상을 알고 나니 오로지 빨리 빚을 갚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 100만원을 던져주는 손님에게도 단호하게 거절했던 그가 얼마 안돼 손님들에 불려간 자리에서 단돈 5만원에 몸을 내맡기는 처지가 됐다. '내가 몸을 팔다니….' 무섭고 징그러운 사내가 떠난 빈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선불 받은 한 달을 채우고는 "그만 두겠다"고 했더니 주인이 "560만원으로 불어난 빚을 갚아야 보내준다"고 했다. (모르는 이들은 달아나지 못하는 걸 의아해 한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가 집에 알려지거나, 가족이 해꼬지를 당할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늘 그렇게 협박을 당한다. 그래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선량한 여성일수록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또 달아나 봐야 반드시 잡히고, 신고해도 다 한통속이라는 인식을 주입 받는다. 그래서 탈출은 꿈도 못 꿀 일이 된다.)

다방의 동료가 '삼촌'(이 바닥 뚜쟁이 남자들의 통칭이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이 남자가 빚을 갚아주고 그의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 강원도의 다른 지역을 거쳐 충북으로 서너 군데 티켓 다방을 전전했다. 다방 동료가 보증을 부탁하고는 돈을 챙겨 달아난 일까지 벌어졌다. 그게 다 고스란히 빚에 얹혀졌다. 삼촌이란 자가 "빚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밑에 지방으로 내려가야 겠다"고 말했다. 남도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곳이 더 험하기 때문에 몸값이 비싸다. 물론 일부 술꾼들의 파행적 행태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지, 지역에 일반화할 것은 아니다. 그가 앞으로 팔려 다닐 섬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 바닥에서 유명하다는 광주의 한 커피숍 광경은 기가 막혔다. 전국의 유흥업주, 소개업자들과 그들이 데려온 젊은 여성들이 넓은 실내를 꽉 메웠다. 여기저기서 떠들썩하게 '거래'가 이뤄졌다. "얘 얼마야?" "너 맘에 든다. 일어나 봐, 돌아 봐!" 백주 도심에 버젓이 판을 벌린 노예시장이었다. 여기서 목포로 팔려갔다. "섬에 가면 한 달에 칠, 팔백 버는 건 일도 아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눈 딱 감고 3개월만 견디면 빚 다 갚고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처음 티켓다방에서부터 업주들마다 "그 따위로 하면 섬에다 팔아 버린다"는 협박을 해왔던 터라 섬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심신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이튿날 배를 타고 3시간 걸려 한 섬에 닿았다.

텅 빈 부둣가에 술집들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황량한 풍경. 첫날부터 받은 뱃사람들의 행태는 너무도 무서웠다. 오랜만에 땅을 디딘 그들은 새벽 출항 전까지 밤새워 접대부들을 학대했다. 옷은 아예 걸치지도 못했고 서로들 빤히 보는 앞에서 윤간을 포함한 온갖 변태적 행위가 이뤄졌다. 욕설과 구타가 난무했고, 술집 집기가 모조리 부서져나가는 건 다반사였다. (실태를 차마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없음을 양해하길) 정신이 온전치 않은 동료는 몸에 너무도 험한 꼴을 당해 늘 보건소를 드나들었다. 물이 귀한 섬이라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상처투성이 몸으로 매일 손님을 받았다. 새벽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저녁까지는 차 배달을 빙자해 또 몸을 팔아야 했다. (대개 한 업소가 낮에는 티켓다방, 밤엔 술집으로 운영한다.) 이건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신을 팔아 넘긴 목포의 소개업자에게 전화해 "죽어도 못 있겠다"고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러나 한번 발 들여놓은 섬에서 빠져나갈 방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이 섬, 저 섬으로 팔려 다닐 뿐이었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다섯 군데 섬을 옮겨 다녔다. 그때마다 업주들끼리 주고받는 몸값이 더해져 빚은 1,600만원으로 불어났다. 어느 업주는 손님이 뜸한 낮 시간에 하릴없이 앉아있는 꼴이 보기 싫다며 밖으로 내몰았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저녁 때 돌아가면 그것까지 다 시간비로 계산해 빚에 얹었다. 그렇지만 빚에 대한 현실감은 없었다. 어차피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돈이니까.

지난해 봄 마지막으로 팔려갔던 섬은 여름 휴가철이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유명 관광지였다. 돈이 흥청거리는 곳이었던 만큼 어떤 포악하고 더러운 행위도 돈으로 다 무마됐다. 주인 가족의 밥과 빨래까지도 해줘야 했다. 업주는 번듯한 그곳의 유지였고, 경찰은 다 형님 동생이었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밤이면 짐승같은 짓을 저지르는 그들이 낮에 혹 마주치기라도 하면 최대한의 경멸을 담은 눈초리로 침을 뱉었다. 잠깐씩 다녀가는 관광객들의 행태도 다르지 않았다. 몸을 팔다 팔다 마침내 갈 데까지 다 간 더러운 존재로 그들을 대했다. 몰래 여성긴급전화에도 연락을 했으나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도와주기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망망대해 고립된 섬에서 출구는 아무데도 없었다.

'이대로 살다 죽는구나' 하는 절망 속에 돌연 기적이 일어난 것은 올 봄이었다. 고교 때부터 알던 남자친구가 뒤늦게 알고는 인터넷에 글을 올려 그의 '구명'을 호소했다. 그걸 보고 실태조사를 온 모 방송팀으로부터 '다시함께센터'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미심쩍어 하는 그에게 센터 측에서 단호하게 메시지를 전했다. "기다리세요. 우리가 내일 당장 형사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겠습니다." 길고도 길었던 악몽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끝이 났다.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상경하는 동안 한 숨도 자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자다 눈을 뜨면 꼭 다시 그곳에 있을 것 같았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꿈에서라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세월이었으므로.

이준희/편집위원 junlee@hk.co.kr

●그는 요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빠져있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술과 스트레스에 따른 식탐으로 30㎏나 불어난 살이 빠지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심신은 벌써 많이 회복돼 보였다. 곧 공부를 다시 시작할 참이라고 했다. '다시함께센터' 조진경(趙眞卿) 소장도 "심성이 착하고 밝아서 상처를 빨리 극복해내고 있다"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대견해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게 아물 상처일까. 그는 짐짓 명랑하려 애쓰다가도 여러 대목에서, 특히 가족 얘기가 나오면 목이 메었다. "결혼이요?… 무서워서 못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 다음에라도 복수하겠다고 남편과 아기를 괴롭히면 어떡해요…."

무심히 그를 지나쳤던, 또는 알고도 외면했던 우리 모두는(특히 남자들은) 공범이려니. 그러니 그가 다시 찾은 삶을 지켜주는 것 또한 우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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