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제 인생에서 훌륭한 선생님이었어요. 절망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천진한 낙천성은 성숙한 인간의 길과 문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일본의 대표적 아동문학작가인 하이타니 겐지로(灰谷健次郞·70)가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교육관과 문학세계를 피력하자 청중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번 강연은 그의 저서 '내가 만난 아이들'(양철북 발행)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하이타니 겐지로의 삶과 문학 그리고 교육'이라는 주제로 마련됐다. 청중 대부분은 전국에서 모여든 초중고 교사들. 당초 400석을 준비했으나 1,000여명이 신청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다소 왜소한 체구에 검게 그을은 얼굴의 그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가난하고 어두웠던 어린시절부터 17년간 교사생활을 하며 만난 아이들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야간고교를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에게 첫 깨달음을 준 것은 초등학교에 부임해 만난 2년생 사토루의 시 한편. '나는 유치원때 트럭에 치였다/…전기톱으로 다리를 잘랐다/나는 병원에서 맨날 울기만 했다/퇴원하고는 텔레비전만 봤다/그리고 한참 있다 뼈가 자랐다/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주었구나'('나의 다리'에서)
그때부터 그는 사토루에게 편지를 썼다. 사토루는 의족을 차고도, 운동회 때 당당하게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달렸다. '어린이의 영혼은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낙천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아이들의 낙천성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며,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가족생계를 책임졌던 큰 형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면서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큰 형에 대한 죄의식으로 17년간의 교사생활을 청산하고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났다. 2년간의 방랑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쓴 책이 바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와 '태양의 아이'. 두 책은 일본에서 300만부, 국내에서도 20만부가 팔렸다.
그의 체험은 고통스런 현실에서도 온기와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 문학세계와 교육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됐다. "교육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통해 교사도 배워야 하고, 교사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인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이유를 그는 "고향인 고베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어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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